2024부산비엔날레《어둠에서 보기 Seeing int the Dark》는 베라 메이 & 필립 피로트 전시 감독과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8월 17일 개최되었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에서 펼쳐진 전시는 78명(팀)의 참여로 이뤄졌다. 전시 제목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어둠에서 보기'를 발견하고자, 전시의 주요한 키워드인 ‘어둠'에 초점을 맞춰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부산비엔날레 장소 중 하나인 부산현대미술관 전경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우선, 비엔날레에서 ‘어둠'이란 단어는 어떻게 쓰였을까? 공식적으로 ‘어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어둠에서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어둠’은 우리가 처한 곤경을 일컫습니다. 어둠은 이미 알려진 곳이면서도 알 수 없는 장소를 항해하는 두려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어둠을 쫓아내는 대신, 어둠의 깊이야말로 포용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1
기획은 시각적이거나 은유적인 어둠 속에서 해적과 불교의 생활로 체득한 또 다른 ‘보기'의 방식을 전시의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이는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에서 따온 개념으로, 이미 어둠을 맞이한 지금-여기의 생태계를 꾸리고 적응한 자들, 더 나아가 어둠을 해방의 공간이자 원초적 자각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여기는 자들의 지혜로부터 시작된다.
난파된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

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부서진 미술관 가벽, 고장난 드론, MDF 합판, 시멘트,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유승현.(좌)
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부서진 미술관 가벽, 고장난 드론, MDF 합판, 시멘트,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우)
비엔날레 초입부터 시각적으로 전시 주제와 공명하는 작품이 등장해 더욱 전체 주제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 장소인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정유진의 <망망대해로>(2024)이다. 캡션에 적힌 ‘부서진'과 ‘고장난'이란 단어, 그리고 건축 재료가 노출된 모습은 거대한 파도에 난파된 배와 해적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작품은 부서진 가벽 사이로 안쪽 공간을 들여다볼 수게 큰 구멍들이 있었고, 한쪽으로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작품 내부로 들어가 파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깥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데 바깥의 시선은 조금 전의 나의 시선이기도 했다. 작품의 구조는 곧 ‘바깥의 나'와 ‘안쪽의 나’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 주변으로 밀어낸 재난을 나의 일로 만들어 낸다. 그 안의 잔해는 또 다른 해적선이 될 재료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이후에 일어날 여정을 상상하게 한다.

송천,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2024, 한지에 견본채색, 지본채색, 각 800x281cm.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정유진의 작업으로 어둠 속 해적의 삶을 떠올렸다면, 바로 옆에 송천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2024)으로 불교의 정신을 보이고 있었다. 불교회화의 기법으로 그려진 관음과 마리아는 사상과 교리에 국한되어 생각하기보단, 그 이면의 진리 찾기란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서로 다름을 포용한 두 도상은 전시 기획의 한 축인 세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일을 의미하는 불교 ‘도량(道場)’의 생활과 이어진다. 도량은 불교 의례가 일어나는 공간인 사찰을 뜻하는데, 그 의미를 확대해 마음 안에서 수행하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해당 작품으로부터 전시가 말하는 공동체란, 종교적 믿음에 국한된다기보단, 공동의 일을 함께하는 자들을 일컫는 개념임을 말하게 된다.
빛이 없어야만 시작되는 이야기
전시의 다른 측면은 빛과 가시성을 바탕으로 한 ‘보기’로써의 지위를 가져왔던 유럽의 계몽주의에서 벗어나고자, 가시적인 체계를 잠시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들에 집중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 프로그램의 일부로 <어둠 속의 탐구>란 워크숍과 <어둠 속의 연주>라는 퍼포먼스가 전시장 내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었다.

홍이현숙, <야행(夜行)>, 2024, 퍼포먼스와 설치, 700x1100x500cm 공간, 30분 참여형 퍼포먼스, 10분 크리터 퍼포먼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어둠 속의 탐구>는 6명의 작가가 구성한 짧은 워크숍 형태로 대부분 관람객이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짜여있었다. <어둠 속의 탐구> 워크숍 중 홍이현숙의 <야행(夜行)>(2024)은 부산현대미술관 2층에서 8월 14일부터 10월 20일까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한 타임에 8명씩 30분간 어둠 속에서 이뤄지는 참여형 워크숍이다. 퍼포먼스는 명부에 이름을 적고 시작 시간 5분 전에 도착해 안내를 듣는 것부터 시작된다. 동물 분장을 한 안내자는 8명의 참여자를 일렬로 세운 후, 입장 전 안내 사항을 전달한다. 소지품을 모두 내려놓고 신발을 벗게 했으며, 가장 선두에 서서 다른 참여자를 말로 안내할 사람을 뽑았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일렬로 서서 차례로 입장할 수 있었다. 30분간 사람들은 시각이 아닌 청각과 후각, 촉각으로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음성 언어가 아닌 어떤 존재로서의 언어를 상상하게끔 했다. 전시 안에 있는 내가 또다른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작품 밖으로 나온 뒤, 밝은 전시장 불빛에 잠시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둠 안에서 빛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감각을 깨우고, 다시 잠재우며 ‘어둠 안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이란 역설에 대해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린 치-웨이, <테이프 뮤직>, 2024, 퍼포먼스, 30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워크숍의 또 다른 전시 프로그램인 <어둠 속의 연주>는 전시 기간 중 3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중 린 치-웨이의 퍼포먼스 <테이프 뮤직>(2024)은 부산현대미술관 2층 로비에서 8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30분간 진행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이다. 작업은 참여자들에게 긴 테이프를 건네주고, 그 위에 적힌 내용을 낭독하게 하여 합창을 이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서로의 소리를 쌓아가며 만드는 가락 안에서 참여자는 임시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과 동시에 공동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한 명의 창작자로는 작품은 완성될 수 없으며, 함께 낭독하는 사람들은 서로 긴 끈을 건네고 받아 가며 순환 고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 작품에 이르러 해적과 불교의 공동체성에 대한 사유가 와닿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낸 공동체의 협의와 규칙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서로를 포용하는 관용적인 태도와 강한 연결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동체성은 현시대 신유자유주의에서 더욱 경종을 울리는 삶의 형태일 것이다.
맞이한 행복한 디스토피아
우버모르겐, <은빛 특이점>,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제작 협력: 필리아스 재단-오스트리아 비엔나 현대미술 부서. 제작 지원: 오스트리아 문화부(BMKOES)와 프로 헬베티아 재단 지원. 조향: 뮤엘러-디브작. 설치 지원: 알렉산더 젠커. 웹 기술 개발: 율리우스 루크마이어 ⓒ최은총.
우버모르겐, <은빛 특이점>,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제작 협력: 필리아스 재단-오스트리아 비엔나 현대미술 부서. 제작 지원: 오스트리아 문화부(BMKOES)와 프로 헬베티아 재단 지원. 조향: 뮤엘러-디브작. 설치 지원: 알렉산더 젠커. 웹 기술 개발: 율리우스 루크마이어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비엔날레의 한 기점인 초량재에 들어서면 우버모르겐의 <은빛 특이점>(2024)의 독특한 향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가는 향과 더불어 공간을 타고 흐르는 핑크빛의 끈적한 물줄기, 인공과 자연이 섞인 식물, 그리고 캐릭터가 보이는 모니터를 뒤섞어 배치해 ‘행복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환경을 표현한다.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모습의 가공 세계를 나타내는 디스토피아 앞에 붙여진 ‘행복한’이란 역설적인 단어의 조합은 어둠 속 생태계의 희로애락을 슬쩍 드러낸 듯했다. 또한 작품은 같은 장소에 배치된 지구본이 쪼개진 형태인 정유진 작가의 <포춘 어스>(2022)와 공명하면서, 유토피아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이 안이 디스토피아 일지라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 왔음을 말한다. 이 작품 앞에 우리는 이미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디스토피아인 초량재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정유진, <포춘 어스>, 2022, 혼합 매체, 가변 크기. ⓒ 최은총.(좌)
정유진, <포춘 어스>, 2022, 혼합 매체, 가변 크기.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우)
전시가 건네는 명확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전시의 두 축으로 삼았던 해적과 불교의 생활에 대한 비중이 꽤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적의 시간인 밤, 그들의 공간인 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인 어둠이란 키워드는 출품작 곳곳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정신, 그리고 도량의 생활은 종교적 키워드 때문인지 작품 설명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전시 설명에서 언급되는 부처는 이주민이자, 난민이자, 프롤레타리아 반역자이자, 낙오자이자, 해적인, 즉 주변인이었다는 점을 되짚어 봤을 때 다시 이해되었다. 전시는 이 주변인의 삶의 공간인 ‘어둠’ 혹은 ‘디스토피아'에서, 유럽 계몽주의 시선으로도, 주류적 시선으로도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이면을 ‘보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기하고 있었다. <야행(夜行)>에서처럼, 내 위에 떠오른 빛을 잠시나마 거뒀을 때만 비로소 떠오르는 메시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Writer 최은총(독립 기획자)
독립 기획자 최은총은 동시대 기술 매체와 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비가시적인 감정, 감각, 분위기,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 프로듀싱, 전시 기획, 비평, 프로젝트 매니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현재 2024 광주비엔날레 전문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현장 코디네이터와 2024 포항 융복합예술 실험실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EMAPx FRIEZE FILM 2024 연계 전시 《중간에서 만나 Meeting Halfway》 에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며, 2024 트라이보울 초이스에 박예린과 선정되어 김상돈, 강재원, 정소영 작가와 함께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1 부산비엔날레 전시 개요 https://busanbiennale2024.com/ko/about/overview (2024. 9. 1. 최초검색)
저작권자 ⓒ Thiscomesfr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4부산비엔날레《어둠에서 보기 Seeing int the Dark》는 베라 메이 & 필립 피로트 전시 감독과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8월 17일 개최되었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에서 펼쳐진 전시는 78명(팀)의 참여로 이뤄졌다. 전시 제목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어둠에서 보기'를 발견하고자, 전시의 주요한 키워드인 ‘어둠'에 초점을 맞춰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부산비엔날레 장소 중 하나인 부산현대미술관 전경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우선, 비엔날레에서 ‘어둠'이란 단어는 어떻게 쓰였을까? 공식적으로 ‘어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기획은 시각적이거나 은유적인 어둠 속에서 해적과 불교의 생활로 체득한 또 다른 ‘보기'의 방식을 전시의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이는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에서 따온 개념으로, 이미 어둠을 맞이한 지금-여기의 생태계를 꾸리고 적응한 자들, 더 나아가 어둠을 해방의 공간이자 원초적 자각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여기는 자들의 지혜로부터 시작된다.
난파된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
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부서진 미술관 가벽, 고장난 드론, MDF 합판, 시멘트,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유승현.(좌)
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부서진 미술관 가벽, 고장난 드론, MDF 합판, 시멘트,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우)
비엔날레 초입부터 시각적으로 전시 주제와 공명하는 작품이 등장해 더욱 전체 주제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 장소인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정유진의 <망망대해로>(2024)이다. 캡션에 적힌 ‘부서진'과 ‘고장난'이란 단어, 그리고 건축 재료가 노출된 모습은 거대한 파도에 난파된 배와 해적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작품은 부서진 가벽 사이로 안쪽 공간을 들여다볼 수게 큰 구멍들이 있었고, 한쪽으로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작품 내부로 들어가 파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깥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데 바깥의 시선은 조금 전의 나의 시선이기도 했다. 작품의 구조는 곧 ‘바깥의 나'와 ‘안쪽의 나’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 주변으로 밀어낸 재난을 나의 일로 만들어 낸다. 그 안의 잔해는 또 다른 해적선이 될 재료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이후에 일어날 여정을 상상하게 한다.
송천,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2024, 한지에 견본채색, 지본채색, 각 800x281cm.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정유진의 작업으로 어둠 속 해적의 삶을 떠올렸다면, 바로 옆에 송천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2024)으로 불교의 정신을 보이고 있었다. 불교회화의 기법으로 그려진 관음과 마리아는 사상과 교리에 국한되어 생각하기보단, 그 이면의 진리 찾기란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서로 다름을 포용한 두 도상은 전시 기획의 한 축인 세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일을 의미하는 불교 ‘도량(道場)’의 생활과 이어진다. 도량은 불교 의례가 일어나는 공간인 사찰을 뜻하는데, 그 의미를 확대해 마음 안에서 수행하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해당 작품으로부터 전시가 말하는 공동체란, 종교적 믿음에 국한된다기보단, 공동의 일을 함께하는 자들을 일컫는 개념임을 말하게 된다.
빛이 없어야만 시작되는 이야기
전시의 다른 측면은 빛과 가시성을 바탕으로 한 ‘보기’로써의 지위를 가져왔던 유럽의 계몽주의에서 벗어나고자, 가시적인 체계를 잠시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다른 감각들에 집중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 프로그램의 일부로 <어둠 속의 탐구>란 워크숍과 <어둠 속의 연주>라는 퍼포먼스가 전시장 내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었다.
홍이현숙, <야행(夜行)>, 2024, 퍼포먼스와 설치, 700x1100x500cm 공간, 30분 참여형 퍼포먼스, 10분 크리터 퍼포먼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어둠 속의 탐구>는 6명의 작가가 구성한 짧은 워크숍 형태로 대부분 관람객이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짜여있었다. <어둠 속의 탐구> 워크숍 중 홍이현숙의 <야행(夜行)>(2024)은 부산현대미술관 2층에서 8월 14일부터 10월 20일까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한 타임에 8명씩 30분간 어둠 속에서 이뤄지는 참여형 워크숍이다. 퍼포먼스는 명부에 이름을 적고 시작 시간 5분 전에 도착해 안내를 듣는 것부터 시작된다. 동물 분장을 한 안내자는 8명의 참여자를 일렬로 세운 후, 입장 전 안내 사항을 전달한다. 소지품을 모두 내려놓고 신발을 벗게 했으며, 가장 선두에 서서 다른 참여자를 말로 안내할 사람을 뽑았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일렬로 서서 차례로 입장할 수 있었다. 30분간 사람들은 시각이 아닌 청각과 후각, 촉각으로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음성 언어가 아닌 어떤 존재로서의 언어를 상상하게끔 했다. 전시 안에 있는 내가 또다른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작품 밖으로 나온 뒤, 밝은 전시장 불빛에 잠시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둠 안에서 빛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던 감각을 깨우고, 다시 잠재우며 ‘어둠 안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이란 역설에 대해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린 치-웨이, <테이프 뮤직>, 2024, 퍼포먼스, 30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워크숍의 또 다른 전시 프로그램인 <어둠 속의 연주>는 전시 기간 중 3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중 린 치-웨이의 퍼포먼스 <테이프 뮤직>(2024)은 부산현대미술관 2층 로비에서 8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30분간 진행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이다. 작업은 참여자들에게 긴 테이프를 건네주고, 그 위에 적힌 내용을 낭독하게 하여 합창을 이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서로의 소리를 쌓아가며 만드는 가락 안에서 참여자는 임시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과 동시에 공동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한 명의 창작자로는 작품은 완성될 수 없으며, 함께 낭독하는 사람들은 서로 긴 끈을 건네고 받아 가며 순환 고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 작품에 이르러 해적과 불교의 공동체성에 대한 사유가 와닿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만들어낸 공동체의 협의와 규칙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서로를 포용하는 관용적인 태도와 강한 연결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동체성은 현시대 신유자유주의에서 더욱 경종을 울리는 삶의 형태일 것이다.
맞이한 행복한 디스토피아
비엔날레의 한 기점인 초량재에 들어서면 우버모르겐의 <은빛 특이점>(2024)의 독특한 향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가는 향과 더불어 공간을 타고 흐르는 핑크빛의 끈적한 물줄기, 인공과 자연이 섞인 식물, 그리고 캐릭터가 보이는 모니터를 뒤섞어 배치해 ‘행복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환경을 표현한다.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모습의 가공 세계를 나타내는 디스토피아 앞에 붙여진 ‘행복한’이란 역설적인 단어의 조합은 어둠 속 생태계의 희로애락을 슬쩍 드러낸 듯했다. 또한 작품은 같은 장소에 배치된 지구본이 쪼개진 형태인 정유진 작가의 <포춘 어스>(2022)와 공명하면서, 유토피아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이 안이 디스토피아 일지라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 왔음을 말한다. 이 작품 앞에 우리는 이미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디스토피아인 초량재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정유진, <포춘 어스>, 2022, 혼합 매체, 가변 크기. ⓒ 최은총.(좌)
정유진, <포춘 어스>, 2022, 혼합 매체, 가변 크기.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우)
전시가 건네는 명확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전시의 두 축으로 삼았던 해적과 불교의 생활에 대한 비중이 꽤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적의 시간인 밤, 그들의 공간인 바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인 어둠이란 키워드는 출품작 곳곳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정신, 그리고 도량의 생활은 종교적 키워드 때문인지 작품 설명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전시 설명에서 언급되는 부처는 이주민이자, 난민이자, 프롤레타리아 반역자이자, 낙오자이자, 해적인, 즉 주변인이었다는 점을 되짚어 봤을 때 다시 이해되었다. 전시는 이 주변인의 삶의 공간인 ‘어둠’ 혹은 ‘디스토피아'에서, 유럽 계몽주의 시선으로도, 주류적 시선으로도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이면을 ‘보는 방식’에 대해 얘기하기하고 있었다. <야행(夜行)>에서처럼, 내 위에 떠오른 빛을 잠시나마 거뒀을 때만 비로소 떠오르는 메시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Writer 최은총(독립 기획자)
독립 기획자 최은총은 동시대 기술 매체와 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비가시적인 감정, 감각, 분위기,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 프로듀싱, 전시 기획, 비평, 프로젝트 매니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현재 2024 광주비엔날레 전문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현장 코디네이터와 2024 포항 융복합예술 실험실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EMAPx FRIEZE FILM 2024 연계 전시 《중간에서 만나 Meeting Halfway》 에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며, 2024 트라이보울 초이스에 박예린과 선정되어 김상돈, 강재원, 정소영 작가와 함께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1 부산비엔날레 전시 개요 https://busanbiennale2024.com/ko/about/overview (2024. 9. 1. 최초검색)
저작권자 ⓒ Thiscomesfr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