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평문화재단 작은미술관 아올다, 《여우 나오는 꿈 Dream of Fox》, 2026,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양평문화재단 작은미술관 아올다에서 열리고 있는 구지언과 여운혜의 2인전 《여우 나오는 꿈》은 정상의 기준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낯선 존재들을 부르는 신이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2025년 인가희갤러리에서 열렸던 동명의 기획을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또다른 작품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및 워크숍이 연계 프로그램으로 함께 구성되었다. 본 글은 양평의 한 지하 전시 공간에 은밀하게 자리한 작품들 속에서, 호명되지 못하고 배제되어 온 존재들에게 귀 기울이는 두 작가의 시선과 감각을 따라간다. 더해, 전시를 가로지르는 '여우'의 의미와 두 작가의 방법론을 경유해 경계 너머의 존재들을 함께 상상해보고자 한다.
여우와 '비(非)'의 존재들
신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하는 구지언의 회화와 버려진 사물을 다루는 여운혜의 설치 조각을 잇는 기획의 매개는 바로 전시 제목에도 등장하는 '여우'라는 존재이다. 여우는 동아시아 설화 속에서 다양한 존재로 탈바꿈되며 혼종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구전되어왔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三國遺事)』 속에서는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여우신으로, 구전설화 『여우누이뎐』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해 가축과 사람의 간을 빼먹는 아홉 꼬리가 달린 구미호로, 또다른 설화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게 하는 신묘한 구슬을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이같은 여우의 존재는 신성과 마성, 현실과 환상, 동물과 인간을 다층적으로 오간다.1 인간의 이성적 언어만으로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는 존재를 상징하는 '여우'는 전시 속 두 작가의 작업을 가로지른다. 그렇다면, 두 작가의 작품을 따라 여우 나오는 꿈을 상상해보자.
먼저, 구지언의 회화는 남성과 여성, 인간과 비인간 등 이분법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혼성적 이미지를 화면 안으로 불러온다. 화면 속 이미지들은 신화와 종교, 드랙(drag) 문화, 단성생식물, 젠더퀴어적인 몸 등 작가가 관심을 두어온 영역들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대표 연작인 <중성신>은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신들을 그리는 무신도(巫神圖)의 구성을 차용하여 화면의 중심에는 신을 두고 그 주변에는 관련된 생물종을 병치한다.2 전시장에 나란히 설치된 <중성신> 연작 <영감도깨비신>과 <양화의 중성신>은 각각 제주도 무속신앙에 나오는 영감도깨비신과, 불과 양서류의 신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좌) 구지언, 〈영감도깨비신〉, 2024, 나무판넬에 아크릴, 162 × 81 cm. (사진 제공: 작가 및 제주현대미술관)
(우) 구지언, 〈양화의 중성신〉, 2024, 나무판넬에 아크릴, 162 × 81 cm.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중성신은 우람한 근육질의 몸과 대비되는 매끄러운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 화려한 화장과 다채로운 복장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끈다. 더불어 도깨비의 특성을 가진 외다리 흑염소, 이구아나, 뱀 등 양서류 종들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이질적인 조합 속 화면의 기호화된 성적 이미지는 보는 이의 시각을 익숙한 해석의 틀로 이끈다. 그러나 요소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해석은 균열을 일으키며 정상성의 규범은 와해된다. 이러한 균열과 불일치 속에서 낯선 감각과 그에 대한 매혹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의 <사이버 드래그 뷰티> 연작은 서로 다른 생명체의 접합을 통해 낯선 존재를 마주하는 것을 이어간다. 중성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사이버 드래그 뷰티-소오>와 <사이버 드래그 뷰티-은란>은 각각 오징어와 염소, 검은발노란주머니거미와 인물의 형상이 중첩된 이미지를 제시한다. 서로 다른 종들이 엉킨 이 형상들은 인간의 인식 체계 안에서 호명되지 못했던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두 연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혼종적 존재들의 눈은 보는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규범과 틀 바깥에서 지속되는 생명력을 드러낸다.

구지언, 〈사이버 드래그 뷰티-소오〉, 2024, 나무판넬에 아크릴, 90.9 × 72.7 cm.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한편, <물경계들>은 작가의 작업 속 혼성적 존재들이 물이라는 투명한 매질 안에서 경계를 넘실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 안팎에서 흔들리며 굴절되어 왜곡된 형상들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우리의 시각에 도달한다. 구지언의 시선은 이렇듯 규정되지 못한 것들, 정상을 만드는 기준에 의해 형을 갖지 못했던 존재들에 귀기울이며 경계를 넘실대는 '비' 존재들을 가시화한다.

구지언, 〈물경계들〉, 2024, 캔버스에 아크릴, 97 × 162 cm.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여운혜는 일상의 주변부에서 소외되어온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작가의 관심은 납작해진 알루미늄 캔, 쓰레기통을 뒤지는 까마귀 등 인간의 시선에서 쓸모없어 버려진 사물과 존재들에 향한다. 까마귀 시리즈인 <대체자>와 <죽은 고기를 먹는-사이버드>는 도시의 흉물로 여겨지던 까마귀에 대한 대안적인 시선을 담는다. 팬데믹 시기 영국에 머물던 작가는 도시화와 쓰레기 증가로 서식지를 잃고 쓰레기통을 오가는 까마귀를 관찰하며 그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던 시간 동안 도시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에게 동질감을 느낀 작가는 그들을 기념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외형만으로는 내부를 알 수 없는 까마귀 조각을 만들었다.

여운혜, 〈대체자〉, 2021, 2024, 왁스, 수집한 쓰레기, 스테인리스 스틸, 클램프 및 혼합재료, 가변 크기. 사진: 이손.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왁스 덩어리로 제작된 실물 크기의 까마귀 조각은 전시장 구석과 가벽 위 등 관람자의 시선과 동선 끝에 자유로이 자리한다. 까마귀의 내부를 이루는 것은 작가가 수집해 온 또다른 버려진 사물들로, 쓰임이 다한 샴푸 펌프와 스프링, 폐전선과 고철, 칫솔 등은 각각 목, 장기, 척추의 형태를 대신한다.3<죽은 고기를 먹는-사이버드>는 작가가 수의사를 찾아가 까마귀 조각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이러한 내부를 드러낸 작업이다. 이는 버려진 사물들이 각자의 성질을 유지한 채 서로 엉키고 결합하며 하나의 존재로 결속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비인간적 요소로 이루어진 왁스 까마귀를 생명체 대하듯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생명과 비생명을 구분해온 위계적 인식과 거리를 두며, 인간과 비인간을 하나의 존재론적 선상에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여운혜, 〈죽은 고기를 먹는—사이버드〉 (부분), 2021, 〈대체자〉 연작 X-ray 촬영 후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수집한 액자, 가변 크기 (최소 32 × 42 cm ~ 최대 46 × 56 cm). 사진: 이손.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버려진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개인의 감각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로 확장된다. 전시 기간 중 진행된 워크숍 및 관객 참여형으로 진행되어온 작업에서 참여자들은 캔 고리들을 모아 서로 연결하며 긴 고리줄을 만들어나간다. 만들어진 고리줄은 반짝이는 별똥별의 궤적을 형상화하는 <별똥별이>와 같이 변주되어 전시 공간을 잇는다. 이러한 작업은 사물과 사람의 쓸모와 유용의 관계를 비도구적이고 정동적인 관계로 재구성한다. 쉽게 버린 캔 고리와 손의 온기가 더하고 더해져 버려진 사물과의 다른 접촉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운혜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길거리의 버려진 사물을 판단하고 대상화하는 인간중심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그들을 미세한 신호와 부름을 보내는 생동하는 존재로 다르게 감각할 수 있다.

여운혜, 〈별똥별이〉, 2024-, 알루미늄 캔 고리, 가변 크기. 사진: 이손.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호명되지 못한 것들을 부르는 상상
두 작가의 작업은 '비'의 존재들의 능동성과 생명력에 귀 기울이며, 상상적 장치와 사물의 부름에 응답하는 방식을 통해 중성신과 혼종적 존재들, 버려진 사물의 생명력과 활기를 포착한다. 전시 속에서 작품들은 정상성과 인간 중심적 기준, 그리고 이가 만든 경계에 대한 의문을 어떠한 제언의 형식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비'의 존재들의 흔적으로 은은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업을 따라가며 다시금 곱씹어 본 지점은 무언가를 설명하고 정의하려는 태도보다 그 자체가 드러나려는 감각이었다. 이는 비인간의 능동성을 탐구하는 생태철학자 제인 베넷(Jane Bennet)이 '부르는(call) 능력'을 위해 사변적 상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4 다만 여기서 사변적 상상이 갖는 엄밀한 SF적 의미보다는, 상상을 통해 존재를 익숙한 기준 안에서 환원하지 않고 또다른 가능성으로 열어가는 지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 과정이 호명되지 못했던 것들이 그 자체로 기이한 힘을 지닌 존재로 전시장 안에 머무는 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이하고 신이한 여우의 등장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호명해왔고, 무엇을 부르지 못했음을, 그러나 우리를 부르는 존재들이 이곳에 함께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Written by 박지민(독립 큐레이터)
저작권자 ⓒ Thiscomesfr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이명현, 「구미호에 대한 다층적 상상력과 문화혼종」, 『국제어문』82, (2019): 42-45.
2 구지언, 『구지언: 중성신』 (서울: 인가희갤러리, 2024), 57.
3 여운혜, 『여운혜: 혼자 한 사랑』(서울: 인가희갤러리, 2024), 217; 여운혜, 노치원과의 인터뷰, 「천천히 마음껏 영원히 ─ 예술가 여운혜」, 『PAPER』 269, (2024): 80.
4 Jane Bennet, "Powers of the Hoard: Further Notes on Material Agency" In Animal, Vetable, Mineral: Ethics and Objects, edited by Jeffrey Cohen(Washington DC: Oliphaunt Books, 2012), 244.
양평문화재단 작은미술관 아올다, 《여우 나오는 꿈 Dream of Fox》, 2026,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양평문화재단 작은미술관 아올다에서 열리고 있는 구지언과 여운혜의 2인전 《여우 나오는 꿈》은 정상의 기준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낯선 존재들을 부르는 신이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2025년 인가희갤러리에서 열렸던 동명의 기획을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또다른 작품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 및 워크숍이 연계 프로그램으로 함께 구성되었다. 본 글은 양평의 한 지하 전시 공간에 은밀하게 자리한 작품들 속에서, 호명되지 못하고 배제되어 온 존재들에게 귀 기울이는 두 작가의 시선과 감각을 따라간다. 더해, 전시를 가로지르는 '여우'의 의미와 두 작가의 방법론을 경유해 경계 너머의 존재들을 함께 상상해보고자 한다.
여우와 '비(非)'의 존재들
신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하는 구지언의 회화와 버려진 사물을 다루는 여운혜의 설치 조각을 잇는 기획의 매개는 바로 전시 제목에도 등장하는 '여우'라는 존재이다. 여우는 동아시아 설화 속에서 다양한 존재로 탈바꿈되며 혼종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구전되어왔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三國遺事)』 속에서는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여우신으로, 구전설화 『여우누이뎐』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해 가축과 사람의 간을 빼먹는 아홉 꼬리가 달린 구미호로, 또다른 설화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게 하는 신묘한 구슬을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이같은 여우의 존재는 신성과 마성, 현실과 환상, 동물과 인간을 다층적으로 오간다.1 인간의 이성적 언어만으로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는 존재를 상징하는 '여우'는 전시 속 두 작가의 작업을 가로지른다. 그렇다면, 두 작가의 작품을 따라 여우 나오는 꿈을 상상해보자.
먼저, 구지언의 회화는 남성과 여성, 인간과 비인간 등 이분법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혼성적 이미지를 화면 안으로 불러온다. 화면 속 이미지들은 신화와 종교, 드랙(drag) 문화, 단성생식물, 젠더퀴어적인 몸 등 작가가 관심을 두어온 영역들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대표 연작인 <중성신>은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신들을 그리는 무신도(巫神圖)의 구성을 차용하여 화면의 중심에는 신을 두고 그 주변에는 관련된 생물종을 병치한다.2 전시장에 나란히 설치된 <중성신> 연작 <영감도깨비신>과 <양화의 중성신>은 각각 제주도 무속신앙에 나오는 영감도깨비신과, 불과 양서류의 신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좌) 구지언, 〈영감도깨비신〉, 2024, 나무판넬에 아크릴, 162 × 81 cm. (사진 제공: 작가 및 제주현대미술관)
(우) 구지언, 〈양화의 중성신〉, 2024, 나무판넬에 아크릴, 162 × 81 cm.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중성신은 우람한 근육질의 몸과 대비되는 매끄러운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 화려한 화장과 다채로운 복장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끈다. 더불어 도깨비의 특성을 가진 외다리 흑염소, 이구아나, 뱀 등 양서류 종들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이질적인 조합 속 화면의 기호화된 성적 이미지는 보는 이의 시각을 익숙한 해석의 틀로 이끈다. 그러나 요소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해석은 균열을 일으키며 정상성의 규범은 와해된다. 이러한 균열과 불일치 속에서 낯선 감각과 그에 대한 매혹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의 <사이버 드래그 뷰티> 연작은 서로 다른 생명체의 접합을 통해 낯선 존재를 마주하는 것을 이어간다. 중성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사이버 드래그 뷰티-소오>와 <사이버 드래그 뷰티-은란>은 각각 오징어와 염소, 검은발노란주머니거미와 인물의 형상이 중첩된 이미지를 제시한다. 서로 다른 종들이 엉킨 이 형상들은 인간의 인식 체계 안에서 호명되지 못했던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두 연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혼종적 존재들의 눈은 보는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규범과 틀 바깥에서 지속되는 생명력을 드러낸다.
구지언, 〈사이버 드래그 뷰티-소오〉, 2024, 나무판넬에 아크릴, 90.9 × 72.7 cm.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한편, <물경계들>은 작가의 작업 속 혼성적 존재들이 물이라는 투명한 매질 안에서 경계를 넘실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 안팎에서 흔들리며 굴절되어 왜곡된 형상들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우리의 시각에 도달한다. 구지언의 시선은 이렇듯 규정되지 못한 것들, 정상을 만드는 기준에 의해 형을 갖지 못했던 존재들에 귀기울이며 경계를 넘실대는 '비' 존재들을 가시화한다.
구지언, 〈물경계들〉, 2024, 캔버스에 아크릴, 97 × 162 cm. 사진: 이정우.
(사진 제공: 작가)
여운혜는 일상의 주변부에서 소외되어온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작가의 관심은 납작해진 알루미늄 캔, 쓰레기통을 뒤지는 까마귀 등 인간의 시선에서 쓸모없어 버려진 사물과 존재들에 향한다. 까마귀 시리즈인 <대체자>와 <죽은 고기를 먹는-사이버드>는 도시의 흉물로 여겨지던 까마귀에 대한 대안적인 시선을 담는다. 팬데믹 시기 영국에 머물던 작가는 도시화와 쓰레기 증가로 서식지를 잃고 쓰레기통을 오가는 까마귀를 관찰하며 그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던 시간 동안 도시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에게 동질감을 느낀 작가는 그들을 기념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외형만으로는 내부를 알 수 없는 까마귀 조각을 만들었다.
여운혜, 〈대체자〉, 2021, 2024, 왁스, 수집한 쓰레기, 스테인리스 스틸, 클램프 및 혼합재료, 가변 크기. 사진: 이손.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왁스 덩어리로 제작된 실물 크기의 까마귀 조각은 전시장 구석과 가벽 위 등 관람자의 시선과 동선 끝에 자유로이 자리한다. 까마귀의 내부를 이루는 것은 작가가 수집해 온 또다른 버려진 사물들로, 쓰임이 다한 샴푸 펌프와 스프링, 폐전선과 고철, 칫솔 등은 각각 목, 장기, 척추의 형태를 대신한다.3<죽은 고기를 먹는-사이버드>는 작가가 수의사를 찾아가 까마귀 조각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이러한 내부를 드러낸 작업이다. 이는 버려진 사물들이 각자의 성질을 유지한 채 서로 엉키고 결합하며 하나의 존재로 결속되는 상태를 보여준다. 비인간적 요소로 이루어진 왁스 까마귀를 생명체 대하듯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생명과 비생명을 구분해온 위계적 인식과 거리를 두며, 인간과 비인간을 하나의 존재론적 선상에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여운혜, 〈죽은 고기를 먹는—사이버드〉 (부분), 2021, 〈대체자〉 연작 X-ray 촬영 후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수집한 액자, 가변 크기 (최소 32 × 42 cm ~ 최대 46 × 56 cm). 사진: 이손.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버려진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개인의 감각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로 확장된다. 전시 기간 중 진행된 워크숍 및 관객 참여형으로 진행되어온 작업에서 참여자들은 캔 고리들을 모아 서로 연결하며 긴 고리줄을 만들어나간다. 만들어진 고리줄은 반짝이는 별똥별의 궤적을 형상화하는 <별똥별이>와 같이 변주되어 전시 공간을 잇는다. 이러한 작업은 사물과 사람의 쓸모와 유용의 관계를 비도구적이고 정동적인 관계로 재구성한다. 쉽게 버린 캔 고리와 손의 온기가 더하고 더해져 버려진 사물과의 다른 접촉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운혜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길거리의 버려진 사물을 판단하고 대상화하는 인간중심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그들을 미세한 신호와 부름을 보내는 생동하는 존재로 다르게 감각할 수 있다.
여운혜, 〈별똥별이〉, 2024-, 알루미늄 캔 고리, 가변 크기. 사진: 이손.
(사진 제공: 인가희갤러리)
호명되지 못한 것들을 부르는 상상
두 작가의 작업은 '비'의 존재들의 능동성과 생명력에 귀 기울이며, 상상적 장치와 사물의 부름에 응답하는 방식을 통해 중성신과 혼종적 존재들, 버려진 사물의 생명력과 활기를 포착한다. 전시 속에서 작품들은 정상성과 인간 중심적 기준, 그리고 이가 만든 경계에 대한 의문을 어떠한 제언의 형식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비'의 존재들의 흔적으로 은은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업을 따라가며 다시금 곱씹어 본 지점은 무언가를 설명하고 정의하려는 태도보다 그 자체가 드러나려는 감각이었다. 이는 비인간의 능동성을 탐구하는 생태철학자 제인 베넷(Jane Bennet)이 '부르는(call) 능력'을 위해 사변적 상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4 다만 여기서 사변적 상상이 갖는 엄밀한 SF적 의미보다는, 상상을 통해 존재를 익숙한 기준 안에서 환원하지 않고 또다른 가능성으로 열어가는 지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 과정이 호명되지 못했던 것들이 그 자체로 기이한 힘을 지닌 존재로 전시장 안에 머무는 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이하고 신이한 여우의 등장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호명해왔고, 무엇을 부르지 못했음을, 그러나 우리를 부르는 존재들이 이곳에 함께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Written by 박지민(독립 큐레이터)
저작권자 ⓒ Thiscomesfr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이명현, 「구미호에 대한 다층적 상상력과 문화혼종」, 『국제어문』82, (2019): 42-45.
2 구지언, 『구지언: 중성신』 (서울: 인가희갤러리, 2024), 57.
3 여운혜, 『여운혜: 혼자 한 사랑』(서울: 인가희갤러리, 2024), 217; 여운혜, 노치원과의 인터뷰, 「천천히 마음껏 영원히 ─ 예술가 여운혜」, 『PAPER』 269, (2024): 80.
4 Jane Bennet, "Powers of the Hoard: Further Notes on Material Agency" In Animal, Vetable, Mineral: Ethics and Objects, edited by Jeffrey Cohen(Washington DC: Oliphaunt Books, 2012),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