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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 그것들의 미시적 연결을 사유하는 것 : 조주현 《공존을 향하는 일 A work towards coexistence》

조주현, 마인드스케이프 Mindscape-16022025, 2025, 장지에 채색, 125 x 175 x 7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페이토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조주현의 개인전 《공존을 향하는 일 A work towards coexistence》은 개인사, 미시사에서 출발해 '공존'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아낸다. 이 글은 전시장을 들어서며 작업에게서 받은 생동하는 환대를 주요 시리즈 작인 <Mindscape>, <Mindscape-미완성으로 향하는 일>에 내재한 '공존'과 '미시사'에 대한 감각과 연결지어 반추한다. 이를 통해 메타 서사에 대한 불신 이후, 실재에 대한 이상과 이념이 상실된 이른바 '멜랑콜리 시대'에 작가의 작업이 함의하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1


미시사로부터 확장된 마음의 풍경 


작가의 작업은 일상의 내밀한 기록에서 출발한다. 전시장 안쪽 소박하게 자리한 드로잉 기록 <@project.dear.diary>은 휘발되는 찰나의 감각과 기억을 붙잡아내기 위해, 작가가 자신과 주변인들의 개인적인 일상의 고유함과 마주하는 감정들을 기록하는 일기와도 같다. 절절한 일상부터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펜데믹 시기 독일에서 겪은 차별 등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개인의 삶을 이루는 미시서사이다. 작가는 이곳에 형과 색을 부여함으로써 평범한 삶이 주는 다채로움을 포착하고자 한 것이다.


조주현, 바람, 2022, 종이에 채색, 각 each 29.7 x 21 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이러한 작가의 심상은 전시장 메인 공간에 펼쳐진 <Mindscape>시리즈로 확장된다. 영국 콘월(Cornwall) 지역에서의 레지던시 경험을 통해 지의류의 공생관계2를 목격한 작가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공존의 방식을 상상한다. 이러한 공존을 위한 장소인 마인드 풍경 속에서 파편적인 일상의 감각들은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3 파스텔 톤이 스며드는 화면 속에는 해파리, 해조류, 바람, 풀, 균사체, 녹조류 같은 비인간 유기체를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자리한다. 이들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부유하며 서로와의 조화를 이뤄나간다.


조주현, 마인드스케이프 Mindscape-31052025, 2025, 장지에 채색,

(Fold) 128.5 x 83 x 4.4cm, (Open) 128.5 x 167 x 2.2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풍경은 때로는 해가 뜨기 전 붉어지는 새벽녘, 비가 오기 전 흐리고 어두컴컴한 낮,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밤하늘처럼 우리를 둘러싼 시공간과 그곳에서 경험하는 고유한 이야기를 불러낸다. 작업이 드러내는 서정적인 내러티브는 풍경 속에 현존(現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경첩을 통해 내부를 조심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Mindecape-31052025>와 같은 작품과 대형 장지에 그려진 메인 풍경화들은 '지금-여기'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순간을 극대화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만든 풍경에 나를 대입함으로써 미시사를 하나의 실재이자 푼크툼(punctum)으로 경험하게 된다.4 이러한 과정은 미시서사에 내포된 사회·정치적인 감정(Socialpolitical feeling)의 잠재성이 확장되는 여정으로, 예술을 통해 조화와 공존의 가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의 고민을 담는다. 


미완성으로 향하는 일 


'공존'의 감각은 전시를 이루는 또 하나의 메인 시리즈인 <Mindescape-미완성으로 향하는 일>를 통해 한층 깊어진다. 노동과 수행성의 고민을 담는 작업은 작가의 작업적 태도와 연관된다. 제목에 드러난 미완성이라는 말처럼, 작업 속에는 지우지 않은 메모와 그리드의 연필 자국 색이 올라가지 않는 풍경의 일부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같은 불완전한 균형 즉, 미완성의 상태를 긍정하는 작가의 작업관에서 1800년대 후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를 주축으로 영국에서 전개된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좌측부터) 조주현, 마인드스케이프 Mindscape-11022025 (미완성을 향하는 일), 2025, 장지에 채색, 60 x 40cm

조주현, 마인드스케이프 Mindscape-07012025 (미완성을 향하는 일), 2025, 장지에 채색, 100 x 70cm

조주현, 마인드스케이프 Mindscape-17012025 (미완성을 향하는 일), 2025, 장지에 채색, 100 x 70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수공예는 노동이 결합된 삶의 존엄과 인간성의 가치와 연결된다. 한국화 기법 중 채색을 켜켜이 쌓아 올려 선명한 색감을 내는 진채화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은 이러한 수행성과 노동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한 붓 한 붓의 수행적 집적이 만든 화면의 밀도 속에서 미세한 감각들을 시각화하려는 작가의 노동과 수행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미완성'이라는 요소를 더함으로써 완성이라면 보이지 않았을 과정으로 시선을 던지게 한다. 이는 매끈한 결과보다는 맥박과 떨림이 새겨진 과정을, 편리함과 효율보다는 멈추어 호흡하는 느림과 축적의 가치와 연관된다.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느리고 비효율적이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작업은 기술 발달과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장의 강한 자극 속에서 점차 무뎌져가는 '느리게 가는 것, 함께하는 공존'의 가치를 속삭인다.5


미국의 정치학자인 윌리엄 코놀리(William E. Connolly)는 미시정치와 관계적 자기-예술이 강도, 감정, 이미지, 개념들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사유와 감수성의 변화를 열어놓는다고 설명한다.6 조주현의 작업 역시 미시서사를 통해 삶 속에 무뎌진 '공존'이라는 감각을 재사유하기를 제안한다. 작품을 통한 현존적 경험 속에서 대상은 사물로, 타자는 고유한 너로 탈바꿈하며 우리는 정동적 공명을 경험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멜랑콜리에 대응하는 공존의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나, 너, 그리고 그것들과의 연결을 느리게 사유함으로써.


Written by 박지민(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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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우치 쇼타로, 『새로운 철학 교과서-현대 실재론 입문』, 이신철 역 (서울: 도서출판 b, 2020), 13-36. 


지의류(地衣類): 균류(곰팡이, 버섯류)와 조류(藻類)가 한데 어울려 생활하는 복합 유기체.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균류에 영양분을 전달하고, 균류는 조류를 둘러싸 수분과 식물의 무리. 균류는 조류를 둘러싼 보호막을 형성하는 등 공생의 관계를 이룬다. 이러한 강력한 생명력으로 건조한 사막, 툰드라, 극지, 우주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3 조주현 작가와의 메일 내용, 2025년 9월 21일. 


4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는 내재적 법칙 또는 이성적 판단을 넘어서 공간체험자의 마음에 찌르듯이 매우 강하게 꽂히는 감정을 '푼크툼'으로 설명했다. (참조: 롤랑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역 (문예신서, 2006)) 


5 작가 노트, 『조주현: 《공존을 향하는 일 A work towards coexistence》』 (페이토갤러리, 2025), 21. 


6 William E. Connollly, Why I Am Not a Secularis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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