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제공: 화랑미술제)
한국화랑협회의 연례 아트페어 ≪화랑미술제≫가 올해도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서울에 집중된 미술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수원을 비롯한 경기 지역의 로컬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강화함으로써 지역 예술문화 생태계의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이러한 포부에 부응하듯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 동안 104개 갤러리가 참여하여 6백 명이 넘는 작가를 소개했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제공: 화랑미술제)
많은 이들에게, 경기도민조차도 경기도는 서울을 중심축으로 굴러가는 지역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수원은 어떠한가? 화랑미술제가 “서울을 넘어 새로운 미술 유통시장 형성”하는 “대규모 경기권 아트페어”를 꿈꾸며 수원컨벤션센터를 선택했던 데는 경기 남부 지역에 뚜렷한 페어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아트 경기가 열려왔던 경기 북부 중심지 파주와 경기 남부 도시들의 차이점 역시 뚜렷하다. 이 도시들은 서울에서 대규모 아트페어가 주로 개최되었던 강남과 지리적으로 근접하다. 수원 역시 마찬가지로, 대부분 시민들은 1시간 내외면 강남에 도착할 수 있다. 광교호수공원과 갤러리아 광교, 수원컨벤션센터로 구성된, 이른바 광교 신도시 지구의 시민들 조차도 강남은 대중교통으로도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반면 ≪화랑미술제 in 수원≫가 두 차례 개최되었던 수원컨벤션센터는 어떤 수원 시민에게는 일상적 공간이지만 어떤 수원 시민에게는 서울 보다 갈 일 없는 동네다. 심지어 수원의 누군가 수원컨벤션센터를 가려면 ≪2025 화랑미술제≫가 열렸던 강남 코엑스에 가는 경우 보다 두 배 넘는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행사를 경기도로 확장하는 것만으로는,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가 “지역과 예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는 없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주목할 갤러리/작가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내부전경. (사진: 배진선)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전통이 어린 도시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으로 수원이라기엔 (정서적이든 거리적이든) 서울에 더 가까운, 21세기 계획도시 광교에서 펼쳐진 아트페어였다. 도시 특성을 반영하듯 조선시대 건축, 회화, 공예를 변주한 작품들과 신도시에 거주하는 새로운 컬렉터 층을 노린 듯 삶과 도시 면면을 다채롭게 담아낸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조를 이루며 공존했다. 올해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 가운데, 수원과 연을 맺은 작가들에 주력하거나 단일 작가에 집중한 갤러리들이 돋보였다.
정제된 건축, 집요한 환상: 이길이구 갤러리/민준홍

이길이구갤러리 전시전경. (제공: 이길이구 갤러리)
이길이구 갤러리는 지난 봄 개인전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 개최 작가, 민준홍 작가를 단독으로 내세웠다. 민준홍은 건축의 틀을 엄격하게 구조화하고 때때로 특정한 그리드 내로로 신체와 소품, 디지털 이미지를 유연하게 침범시켜, 현대사회의 다층적인 불안을 기묘하게 파고든다. 이번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는 이길이구 갤러리 개인전에서 소개되었던 회화 연작들을 단채널 영상 두 점과 함께 구성했다. 공간기획이 눈에 띄었는데, 모델하우스에서처럼 작품을 배치하여 컬렉터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는 동시에 수많은 작품들 사이를 지나가며 관람객들이 한 작품에 머무는 시간이 짧은 아트페어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작가의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민준홍, <AlgorithmChronology_Episode>, 2024, Single-channel Video, Pen on Paper. (사진: 배진선)
25점의 드로잉 연작과 영상으로 구성된 <AlgorithmChronology_Episode>는 MBTI의 T스러운 모먼트들을 툭툭 던지며 도시에 빼곡하게 존재하는 군상들을 소환한다. “넷플릭스 보러 갈 거야”라는 드로잉/영상 속 인물 대사 그대로, 도시인들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풍경을 벗어나 홀로 존재할 때도 OTT를 뒤적이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관망한다. 이러한 모습을 구현하듯 작품 영상은 널찍한 1인용 소파에 앉아 관람하도록 연출되었다. <Consternation Life Style> 연작이 탁하면서도 화려한 색채로 도시의 기묘한 구조들을 뒤튼다면, <AlgorithmChronology_Episode>은 세밀한 펜선으로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나누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동시에 유연해야 할 신체 형상들의 머리에 다각적인 구조물을 입혀 T처럼 보이게 묘사하며,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대사를 내뱉지만 알고리즘에 편입된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을 맴돌아 새롭게 감각하는 풍경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전경(사진: 배진선)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한국 동시대 회화/조각 분야에서 신선한 흐름을 이끄는 여섯 작가를 소개하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과 감각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박노완의 작품들은 뒤엉키고 뭉개진 늪에 온전히 허우적거릴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한편 선명하고 화사하게 감정과 인식을 추상화한 풍경을 펼쳐낸 이세준과 장성은의 회화 사이로로 서재웅의 나무 조각들은 모호한 표정으로 관람객들을 응시하며,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돌아보게 했다.
지역의, 지역을 위한: 피비 갤러리/김은하, 김민수, 윤이도, 임순남, 함미나

피비갤러리 전시전경(사진: 배진선)
피비 갤러리는 수원 연고 작가들(김은하, 김민수, 윤이도, 임순남, 함미나) 주축으로 도시 풍경과 소비사회, 내면의 감성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7인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아트페어가 지역에 기여하는 원초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지역과 연결된 좋은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다. 지역 아트페어에서 지역 작가들을 보여준다는 전략은 다른 갤러리들에서도 내세웠을테지만, 피비 갤러리는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지역과 연을 맺은 작가들을 주제로는 자연과 도시 면면, 일상, 서정적인 감정, 형식으로는 패브릭과 회화 등을 아우르며 폭넓게 소개하며 수원 미술이 나아갈 수 있는 지평을 넓혔다.
주목, 수원과 인연을 쌓은 작가들
미국-한국 혼혈이자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현재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시민권자 작가가 비엔날레에 참여했을 때, 자신은 한국 작가로 분류되는지 미국 작가로 분류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한국미술이란 무엇인가? 한국작가란 누군가?’와 같은 논리로, 수원 미술은 무엇인지 수원 작가는 어떤 작가들인지 쉽게 정의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을 통해 수원시가 문화도시로서 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고자 한다면, 수원문화예술이 풍성하게 이어져 왔던 시간들에 자리했던 작가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화랑미술제는 수원과 연이 있던 작가들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가며 미술계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두드러졌다.
권혜경(갤러리 조선)

갤러리조선 전시전경 (사진: 배진선)
권혜경은 컨테이너와 방호벽, 안전봉 등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사물들을 가벼운 블록처럼 쌓아내거나 편지처럼 얇은 물성을 두꺼운 캔버스로 재구성한다. 나아가 언어와 아이콘처럼 구체적 의미를 가진 기호들을 암호처럼 화면 위로 배치하며, 이동을 반복하며 나타나는 감정의 파편들을 떠오르게 한다. 작가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 ≪BE정상≫(2021)에 참여했을 때, 고정된 장소에 안착하지 못하고 레지던시 곳곳을 이동하는 불안을 다뤘다. 이후 ≪러브레터≫(보안여관, 서울, 2021), ≪빠빠이 혜경≫(갤러리조선, 서울, 2023), ≪Mom, Outside, Together≫(바시스, 프랑크푸르트, 2025)등 국내외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권혜경, <배 부른 사람> 2022, acrylic, pencil on canvas, 53 × 40.9 cm, <워셔블 메모>, 2023, acrylic, pencil on canvas, 53 × 40.9 cm 등 (사진: 배진선)
최근 전시 제목이 드러내듯 권혜경은 출산 이후 경험한 경력 단절, 아이를 기르는 삶과 모성, 작가로서의 욕망 등을 다루며,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은 육아용품에서 포착한 귀여운 캐릭터와 로고가 어우러져 직관적인 즐거움을 더하며 더욱 적극적인 대화를 열어간다.
윤이도(피비 갤러리)

(좌) 윤이도,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1>,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2>, 2025, Ink on Korean paper, 90 × 60 cm. (사진: 배진선)
(우) 윤이도, <함께 기대어>, 2025, Ink on Korean paper, 34.5 × 27 cm. (사진: 배진선)
윤이도는 시간이 축적된 존재들을 그린다. 때로는 사람이며 때로는 동물들이고 때로는 나무와 하늘과 같은 자연이다. 그들이 담아낸 시간과 감정의 밀도를 짙은 먹으로 세밀하게 펼쳐간다. 수원시립미술관 신진 작가 동행프로젝트 ≪토끼를 따라가면 달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에 컬렉티브 XXX로 참여했을 때, 윤이도는 커다란 화폭에 수원의 오랜 시장을 이루는 사람들의 서사를 새겨둔 작업을 선보였다. 화랑미술제에서는 서정적인 제목의 세 작품으로 작가가 자연을 담아내는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1>,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2>에서 작가는 뿌리와 가지, 잎과 이끼까지 부분부분을 극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고목은 가볍게 쌓이고 흩어진 눈송이와 공명하며 자연에 새겨진 세월들을 담아냈다. 얽히고 뻗어나간 나뭇가지들 가운데 단면이 꺾여나간 가지들은 부서진 마음들을 아릿하게 상상하게 했다. <함께 기대어>는 도시의 오랜 흔적이 패인 곳에 머무는 새들을 비추며, 급격한 발전 뒤켠에 밀려나간 도시의 자연을 되새긴다. 윤이도는 지난달 스페이스 깨에서의 이인전 ≪흰 그리고 검은, 그 곳≫를 마무리하고, 현재 충무로 오재미동 갤러리에서서 개인전 ≪영화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함미나(피비 갤러리)

함미나, <종이접기>, 2025, Oil on canvas, 60.6 × 60.6 cm, <밤의 요정>, 2025, Oil on wood panel, 31.8 × 40.9 cm (사진: 배진선)
함미나 작가는 현재 수원시립미술관 전시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야≫(2025.04.15~2026.02.22)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흐릿하고 뭉개진 표현으로 인물을 표현하며 이어진 기억으로 파생된 감정의 잔재들을 극대화한다. <종이접기>와 <밤의 요정>은 아이들의 모습을 푸르게 담아내며 어린 시절 추억을 선명하게 불러낸다.
김은하(피비 갤러리)
김은하, <plant pot> 시리즈 및 버섯 작품들 (제공: 피비갤러리)
수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은하는 패스트 패션의 부산물인 패브릭으로 인공적인 자연조형을 만든다. ≪2025 화랑미술제≫에서는 <진짜인 척하는 립살리스>, <청바지를 입은 보스턴 고사리>를 포함해 <plant pot> 연작과 버섯 소품들로 패브릭의 물성에 여러 변주를 주어 자연과 인공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수문장: 당신의 풍경, 당신의 취향≫, ‘정지영커피로스터즈’, 예술을 퍼트려 사회를 끌어안고 지역 상생 입증하기. 그리고?

≪수문장: 당신의 풍경, 당신의 취향≫ 전시전경. (사진: 배진선)
수원문화재단은 올해도 ‘수문장 아트페어’를 운영하며 지역작가들의 작품 유통을 확장하고자 했다. <휴먼스케이프>, <수원스케이프>, <텍스처스케이프>, <드림스케이프>, <로컬스케이프>, 총 다섯 섹션으로 구분하여 수원미술협회와 수원민족미술인협회 소속 작가 21인에 공모를 통해 선정된 수원 기반 작가 20인을 더해 넓은 연령대를 아우르는 41인을 소개했다. 참여 작가들 가운데 윤혜빈의 작품 <우연과 의도, 곡선과 직선, 그리고 도시 1>과 <Spatial composition 1>이 주목할 만했다. 윤혜빈은 기포 섞인 오염물질과 매캐한 대기를 연상시키 듯 캔버스 안에서 옅고 부드러운 색채로 뭉근하게 맴도는 기류를 배경으로 선명하지만 추상화된 도시 건축 파면들을 날카롭게 그려내며 모순과 대조를 중첩시키는 회화를 선보였다. 다만 시립미술관이 꾸준히 지역 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일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협회와 공모에 연계한 방식으로 지역작가를 꾸려 페어에서 소개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좌) 정지영커피로스터스 팝업공간,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사진: 배진선)
(우) 오그림아트살롱,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사진: 배진선)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첫 날 프리뷰 일정에는 약 4,700여 명이, 총 전시기간에는 예년과 유사한 3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집계했다. 무엇보다 광교에 사는 가족들의 왕성한 참여로 인한 행사 재방문율과 젊은 작가 중심의 판매 호조를 강조하며 미술시장 대중화 확장을 성과로 내세웠다. 더불어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아트페어가 지역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수원에서 여러 지점들을 운영하는 ‘정지영 커피 로스터즈’가 F&B 파트너로 참여하여, 아트페어의 상생이 문화예술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에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린이 미술 프로그램 ‘키즈 아트살롱’과 반려동물동반 입장을 위한 펫모차 대여, 와인미식체험을 마련했던 까닭 역시 신도시 거주 가족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아트페어로 거듭나기 위한 모색들이었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외부전경. (사진: 배진선)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한 ≪화랑미술제 in 수원≫에 ‘많은 방문객을 이끌고 많은 작품을 판매한 아트페어로서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이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서울과 밀접한 신도시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시장이 지역과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호흡하고 있는가’는 질문은 수원, 나아가 경기 미술인들로부터 지속될 질문이다.
Written by 배진선(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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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제공: 화랑미술제)
한국화랑협회의 연례 아트페어 ≪화랑미술제≫가 올해도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서울에 집중된 미술시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수원을 비롯한 경기 지역의 로컬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강화함으로써 지역 예술문화 생태계의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이러한 포부에 부응하듯 6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 동안 104개 갤러리가 참여하여 6백 명이 넘는 작가를 소개했다.
많은 이들에게, 경기도민조차도 경기도는 서울을 중심축으로 굴러가는 지역이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수원은 어떠한가? 화랑미술제가 “서울을 넘어 새로운 미술 유통시장 형성”하는 “대규모 경기권 아트페어”를 꿈꾸며 수원컨벤션센터를 선택했던 데는 경기 남부 지역에 뚜렷한 페어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아트 경기가 열려왔던 경기 북부 중심지 파주와 경기 남부 도시들의 차이점 역시 뚜렷하다. 이 도시들은 서울에서 대규모 아트페어가 주로 개최되었던 강남과 지리적으로 근접하다. 수원 역시 마찬가지로, 대부분 시민들은 1시간 내외면 강남에 도착할 수 있다. 광교호수공원과 갤러리아 광교, 수원컨벤션센터로 구성된, 이른바 광교 신도시 지구의 시민들 조차도 강남은 대중교통으로도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반면 ≪화랑미술제 in 수원≫가 두 차례 개최되었던 수원컨벤션센터는 어떤 수원 시민에게는 일상적 공간이지만 어떤 수원 시민에게는 서울 보다 갈 일 없는 동네다. 심지어 수원의 누군가 수원컨벤션센터를 가려면 ≪2025 화랑미술제≫가 열렸던 강남 코엑스에 가는 경우 보다 두 배 넘는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행사를 경기도로 확장하는 것만으로는,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가 “지역과 예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는 없다.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주목할 갤러리/작가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내부전경. (사진: 배진선)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전통이 어린 도시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으로 수원이라기엔 (정서적이든 거리적이든) 서울에 더 가까운, 21세기 계획도시 광교에서 펼쳐진 아트페어였다. 도시 특성을 반영하듯 조선시대 건축, 회화, 공예를 변주한 작품들과 신도시에 거주하는 새로운 컬렉터 층을 노린 듯 삶과 도시 면면을 다채롭게 담아낸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조를 이루며 공존했다. 올해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는 동시대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 가운데, 수원과 연을 맺은 작가들에 주력하거나 단일 작가에 집중한 갤러리들이 돋보였다.
정제된 건축, 집요한 환상: 이길이구 갤러리/민준홍
이길이구갤러리 전시전경. (제공: 이길이구 갤러리)
이길이구 갤러리는 지난 봄 개인전 ≪그럼에도, 풍차는 돌아간다≫ 개최 작가, 민준홍 작가를 단독으로 내세웠다. 민준홍은 건축의 틀을 엄격하게 구조화하고 때때로 특정한 그리드 내로로 신체와 소품, 디지털 이미지를 유연하게 침범시켜, 현대사회의 다층적인 불안을 기묘하게 파고든다. 이번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는 이길이구 갤러리 개인전에서 소개되었던 회화 연작들을 단채널 영상 두 점과 함께 구성했다. 공간기획이 눈에 띄었는데, 모델하우스에서처럼 작품을 배치하여 컬렉터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는 동시에 수많은 작품들 사이를 지나가며 관람객들이 한 작품에 머무는 시간이 짧은 아트페어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작가의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25점의 드로잉 연작과 영상으로 구성된 <AlgorithmChronology_Episode>는 MBTI의 T스러운 모먼트들을 툭툭 던지며 도시에 빼곡하게 존재하는 군상들을 소환한다. “넷플릭스 보러 갈 거야”라는 드로잉/영상 속 인물 대사 그대로, 도시인들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풍경을 벗어나 홀로 존재할 때도 OTT를 뒤적이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관망한다. 이러한 모습을 구현하듯 작품 영상은 널찍한 1인용 소파에 앉아 관람하도록 연출되었다. <Consternation Life Style> 연작이 탁하면서도 화려한 색채로 도시의 기묘한 구조들을 뒤튼다면, <AlgorithmChronology_Episode>은 세밀한 펜선으로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나누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동시에 유연해야 할 신체 형상들의 머리에 다각적인 구조물을 입혀 T처럼 보이게 묘사하며, 저마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대사를 내뱉지만 알고리즘에 편입된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을 맴돌아 새롭게 감각하는 풍경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전경(사진: 배진선)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에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한국 동시대 회화/조각 분야에서 신선한 흐름을 이끄는 여섯 작가를 소개하며,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과 감각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박노완의 작품들은 뒤엉키고 뭉개진 늪에 온전히 허우적거릴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한편 선명하고 화사하게 감정과 인식을 추상화한 풍경을 펼쳐낸 이세준과 장성은의 회화 사이로로 서재웅의 나무 조각들은 모호한 표정으로 관람객들을 응시하며,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돌아보게 했다.
지역의, 지역을 위한: 피비 갤러리/김은하, 김민수, 윤이도, 임순남, 함미나
피비갤러리 전시전경(사진: 배진선)
피비 갤러리는 수원 연고 작가들(김은하, 김민수, 윤이도, 임순남, 함미나) 주축으로 도시 풍경과 소비사회, 내면의 감성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7인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아트페어가 지역에 기여하는 원초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지역과 연결된 좋은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다. 지역 아트페어에서 지역 작가들을 보여준다는 전략은 다른 갤러리들에서도 내세웠을테지만, 피비 갤러리는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지역과 연을 맺은 작가들을 주제로는 자연과 도시 면면, 일상, 서정적인 감정, 형식으로는 패브릭과 회화 등을 아우르며 폭넓게 소개하며 수원 미술이 나아갈 수 있는 지평을 넓혔다.
주목, 수원과 인연을 쌓은 작가들
미국-한국 혼혈이자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현재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시민권자 작가가 비엔날레에 참여했을 때, 자신은 한국 작가로 분류되는지 미국 작가로 분류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한국미술이란 무엇인가? 한국작가란 누군가?’와 같은 논리로, 수원 미술은 무엇인지 수원 작가는 어떤 작가들인지 쉽게 정의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을 통해 수원시가 문화도시로서 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지고자 한다면, 수원문화예술이 풍성하게 이어져 왔던 시간들에 자리했던 작가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화랑미술제는 수원과 연이 있던 작가들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가며 미술계에서 꾸준히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두드러졌다.
권혜경(갤러리 조선)
갤러리조선 전시전경 (사진: 배진선)
권혜경은 컨테이너와 방호벽, 안전봉 등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사물들을 가벼운 블록처럼 쌓아내거나 편지처럼 얇은 물성을 두꺼운 캔버스로 재구성한다. 나아가 언어와 아이콘처럼 구체적 의미를 가진 기호들을 암호처럼 화면 위로 배치하며, 이동을 반복하며 나타나는 감정의 파편들을 떠오르게 한다. 작가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 광교 ≪BE정상≫(2021)에 참여했을 때, 고정된 장소에 안착하지 못하고 레지던시 곳곳을 이동하는 불안을 다뤘다. 이후 ≪러브레터≫(보안여관, 서울, 2021), ≪빠빠이 혜경≫(갤러리조선, 서울, 2023), ≪Mom, Outside, Together≫(바시스, 프랑크푸르트, 2025)등 국내외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권혜경, <배 부른 사람> 2022, acrylic, pencil on canvas, 53 × 40.9 cm, <워셔블 메모>, 2023, acrylic, pencil on canvas, 53 × 40.9 cm 등 (사진: 배진선)
최근 전시 제목이 드러내듯 권혜경은 출산 이후 경험한 경력 단절, 아이를 기르는 삶과 모성, 작가로서의 욕망 등을 다루며,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은 육아용품에서 포착한 귀여운 캐릭터와 로고가 어우러져 직관적인 즐거움을 더하며 더욱 적극적인 대화를 열어간다.
윤이도(피비 갤러리)
(좌) 윤이도,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1>,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2>, 2025, Ink on Korean paper, 90 × 60 cm. (사진: 배진선)
(우) 윤이도, <함께 기대어>, 2025, Ink on Korean paper, 34.5 × 27 cm. (사진: 배진선)
윤이도는 시간이 축적된 존재들을 그린다. 때로는 사람이며 때로는 동물들이고 때로는 나무와 하늘과 같은 자연이다. 그들이 담아낸 시간과 감정의 밀도를 짙은 먹으로 세밀하게 펼쳐간다. 수원시립미술관 신진 작가 동행프로젝트 ≪토끼를 따라가면 달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에 컬렉티브 XXX로 참여했을 때, 윤이도는 커다란 화폭에 수원의 오랜 시장을 이루는 사람들의 서사를 새겨둔 작업을 선보였다. 화랑미술제에서는 서정적인 제목의 세 작품으로 작가가 자연을 담아내는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1>, <새끝 눈송이에 산산이 부서지던 마음도 2>에서 작가는 뿌리와 가지, 잎과 이끼까지 부분부분을 극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한 고목은 가볍게 쌓이고 흩어진 눈송이와 공명하며 자연에 새겨진 세월들을 담아냈다. 얽히고 뻗어나간 나뭇가지들 가운데 단면이 꺾여나간 가지들은 부서진 마음들을 아릿하게 상상하게 했다. <함께 기대어>는 도시의 오랜 흔적이 패인 곳에 머무는 새들을 비추며, 급격한 발전 뒤켠에 밀려나간 도시의 자연을 되새긴다. 윤이도는 지난달 스페이스 깨에서의 이인전 ≪흰 그리고 검은, 그 곳≫를 마무리하고, 현재 충무로 오재미동 갤러리에서서 개인전 ≪영화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함미나(피비 갤러리)
함미나, <종이접기>, 2025, Oil on canvas, 60.6 × 60.6 cm, <밤의 요정>, 2025, Oil on wood panel, 31.8 × 40.9 cm (사진: 배진선)
함미나 작가는 현재 수원시립미술관 전시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야≫(2025.04.15~2026.02.22)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흐릿하고 뭉개진 표현으로 인물을 표현하며 이어진 기억으로 파생된 감정의 잔재들을 극대화한다. <종이접기>와 <밤의 요정>은 아이들의 모습을 푸르게 담아내며 어린 시절 추억을 선명하게 불러낸다.
김은하(피비 갤러리)
수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은하는 패스트 패션의 부산물인 패브릭으로 인공적인 자연조형을 만든다. ≪2025 화랑미술제≫에서는 <진짜인 척하는 립살리스>, <청바지를 입은 보스턴 고사리>를 포함해 <plant pot> 연작과 버섯 소품들로 패브릭의 물성에 여러 변주를 주어 자연과 인공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수문장: 당신의 풍경, 당신의 취향≫, ‘정지영커피로스터즈’, 예술을 퍼트려 사회를 끌어안고 지역 상생 입증하기. 그리고?
≪수문장: 당신의 풍경, 당신의 취향≫ 전시전경. (사진: 배진선)
수원문화재단은 올해도 ‘수문장 아트페어’를 운영하며 지역작가들의 작품 유통을 확장하고자 했다. <휴먼스케이프>, <수원스케이프>, <텍스처스케이프>, <드림스케이프>, <로컬스케이프>, 총 다섯 섹션으로 구분하여 수원미술협회와 수원민족미술인협회 소속 작가 21인에 공모를 통해 선정된 수원 기반 작가 20인을 더해 넓은 연령대를 아우르는 41인을 소개했다. 참여 작가들 가운데 윤혜빈의 작품 <우연과 의도, 곡선과 직선, 그리고 도시 1>과 <Spatial composition 1>이 주목할 만했다. 윤혜빈은 기포 섞인 오염물질과 매캐한 대기를 연상시키 듯 캔버스 안에서 옅고 부드러운 색채로 뭉근하게 맴도는 기류를 배경으로 선명하지만 추상화된 도시 건축 파면들을 날카롭게 그려내며 모순과 대조를 중첩시키는 회화를 선보였다. 다만 시립미술관이 꾸준히 지역 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일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협회와 공모에 연계한 방식으로 지역작가를 꾸려 페어에서 소개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좌) 정지영커피로스터스 팝업공간,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사진: 배진선)
(우) 오그림아트살롱,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 전경. (사진: 배진선)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첫 날 프리뷰 일정에는 약 4,700여 명이, 총 전시기간에는 예년과 유사한 3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집계했다. 무엇보다 광교에 사는 가족들의 왕성한 참여로 인한 행사 재방문율과 젊은 작가 중심의 판매 호조를 강조하며 미술시장 대중화 확장을 성과로 내세웠다. 더불어 <2025 화랑미술제 in 수원>은 아트페어가 지역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수원에서 여러 지점들을 운영하는 ‘정지영 커피 로스터즈’가 F&B 파트너로 참여하여, 아트페어의 상생이 문화예술에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에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린이 미술 프로그램 ‘키즈 아트살롱’과 반려동물동반 입장을 위한 펫모차 대여, 와인미식체험을 마련했던 까닭 역시 신도시 거주 가족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아트페어로 거듭나기 위한 모색들이었다.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한 ≪화랑미술제 in 수원≫에 ‘많은 방문객을 이끌고 많은 작품을 판매한 아트페어로서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이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서울과 밀접한 신도시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시장이 지역과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호흡하고 있는가’는 질문은 수원, 나아가 경기 미술인들로부터 지속될 질문이다.
Written by 배진선(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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