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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지구적 인류학자로서의 예술가?

[도판 1]  소피야 스키단, 〈아직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한 기묘함 을 뭐라고 부르지?〉, 2019-2024 3채널 비디오 설치, 사운드,컬러, 7 분, 10 분, 12 분. 가변크기. 프로젝터 협찬: LG. 유리 작업 보조: 하르쉬 바르단 노울 라카, 게이지 스티븐스. 사진: 박예린.


지난 9월 초, 제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가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 및 큐레이터 5인 (소피아 박, 제이드 바르제, 바바라 라지에, 이은아, 쿠랄라이 압두칼리코바)의 기획으로 개최되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 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는 ‘판소리’를 주제로 하여 기후 위기에 직면한 인류세에 공간(판)과 소리의 접점을 탐구한다. 판소리와 인류세. 서문을 읽어도 쉽게 관련짓기 어려운, 무관해 보이는 두 단어를 묶고자 하는 이 시도는 어디에서 온 걸까?


우선 이 전시에서 ‘판소리’가 남도의 중요 문화 유산으로서 얼마나 깊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겠다. 판소리는 ‘오페라’가 아니다. 판소리 연희는 분명 소리꾼과 고수의 주고받음 사이사이, 폭발하는 감정의 추임새로 틈입하는 청중의 참여라는 재미난 다이내믹으로 이루어진 음악 장르다. 그 점에서 분명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공공의 공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공간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소리' 그 자체이다. 판소리의 ‘소리'는 노이즈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수궁가(군신유의) , 심청가(부자유친), 흥보가(장유유서), 적벽가(붕우유신), 춘향가(부부유별)이라는 삼강오륜의 유교 질서를 전달하고 (때로는) 비트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내러티브다. 


기획의 핵심적 측면에서, ‘판소리’라는 단어가 소리와 공간이라는 두 테마에 대한 “새롭고 토속적(vernacular)인 관점”을 열어주는 키워드 정도로 호출되고 있다는 점은 유감이다. (아래에 다루어질 니콜라 부리오의 이론이 결국 어디로 닿는지를 확인하게 되면 더욱 말이다.) 전시에서 72명의 작가 중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판소리’를 주제로 (넓게 보면 한국 전통 음악을) 다룬 작가는 나 미라(Na Mira), 미라 만(Mira Mann), 김영은, 사단 아피프(Saâdane Afif) 뿐이다. 작가와 작품 수의 문제라기보다는, 판소리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큐레토리얼 측면에서 얼마나 이루어졌는지의 문제다. 다른 곳이 아닌 ‘광주’ 비엔날레의 유산이어야 하기에. 


[도판 2] 피터 부겐후트,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91 The Blind Leading The Blind #91〉, 2020, 나무, 알루미늄, 철, 플라스틱, 석고, 폴리에스테르, 폴리우레탄 폼 및 집먼지 층, 270×389×295cm. 사진: 박예린.


  확실히 《판소리: 모두의 울림》에서 표명하는 기획은 국내 대중에 『관계의 예술 Relational Art』(1998), 『포스트프로덕션 Postproduction』(2002), 『래디컨트 Radicant』(2009) 등의 저서로 소개된 니콜라 부리오의 초기 미학적 관심사와는 다소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인류에 의한 전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2014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최근 10년간 전개된 것이었다. 당대의 가장 중대하고 긴급한 시의성을 지닌 주제를 다룬다는 측면 외에도, 인류세에 대한 관심은 비평가 본인에게도 관계 미학에 가해져 왔던 인간 중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타개하고 정체되어 있던 이론을 확장하는 활로가 되어주었다. 2014년 타이베이 비엔날레 《거대한 가속: 인류세의 예술 The Great Acceleration: Art in the Anthropocene》(2014.9.13.-2015.1.4.)에서 예술 감독을 맡았던 니콜라 부리오는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까지도 동일한 철학적 기반에서 사유하자는 철학 운동인 “사변적 실재론”을 참조하여 인류세에 인류와 영향을 주고 받는 비인간 존재들의 주체성을 강조했다.1 이를 통해 그는 관계 미학의 범위를 인간 상호간 관계를 넘어 “기계, 동물, 식물 또는 바위와의 관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시켰다.2


나아가 저서 『엑스폼 Exform』(2016)에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잉여 폐기물과 분류 메커니즘을 ‘엑스폼’이라 명명하며, 그것의 포함과 배제를 모호하게 하는 정치적 예술, "리얼리스트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 일례로, 혼잡하고 포화된 작금의 세계를 다루는 이번 광주 비엔날레의 첫 번째 섹션 ≪피드백 효과 Feedback Effect≫에는 유기물이나 플라스틱, 고철 등 도시 폐기물로 제작된 피터 부겐후트(Peter Buggenhout)의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시리즈가 전시된다[도판 2]. 2014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서도 선보여졌던 이 작품은 좁은 복도들로 구획된 첫 번째 갤러리(G1)의 한 모서리에서 육중한 부피감으로 공간을 압박한다. 한편 세 번째 갤러리(G3)에서 프랭크 스컬티(Franck Scurti)는 쓰레기 처리와 분류, 형태와 쓰임의 변환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광주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선별한 쓰레기들로 전시장 벽면에 악보를 그리고, 광주 일원 쓰레기통에서 채집한 곰팡이를 배양한 석고 버섯 조각을 선보인다[도판 3].

[도판 3] 프랭크 스컬티, 〈광주 기록〉, 2024, 혼합 매체, 조각 130 × 60 × 60 cm (3), 벽면 그림 400 × 300cm,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사진: 박예린.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니콜라 부리오의 가장 최신의 저서 『포용: 자본세의 미학 Inclusions: Aesthetics of the Capitalocene』(2022)의 내용과 가장 닮았다. 짧게 요약하자면, 이 책에서 그는 기후 위기 문제에서 심화된 자본주의의 폐해를 강조하는 용어인 ‘자본세’를 사용하며, 당대의 유의미한 예술 실천으로 인간과 동식물, 자연 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토테미즘”적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에 주목한다. 이들은 서구의 세 가지 사고 체계인 자본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에 반대하며, “분자적 차원에서의 인류학자”로서 자연에 대한 윤리적 관찰과 참여를 실천한다.3 관계의 미학은 이처럼 필연적으로 인간의 차원에서 비인간 존재의 차원으로, 자연으로, 광활한 우주와 극미한 분자적 차원까지를 다루게 될 수순이었다.

 

[도판 4] 주라 셔스트, 〈초심자 III: 가장 짧은 밤의 전야〉, 2023, 울트라 HD 비디오, 사운드, 컬러, 14분 33초, 연속재생. 후원: IFA, 프로젝터 협찬: LG. 사진: 박예린. (좌)

[도판 5] 주라 셔스트, 〈한 해의 성장을 최상단에 남기며: 계승〉, 2024 가문비나무 기둥, 수지, 침엽바늘, 스테인리스강, LED조명, 240×220×200cm. 후원: IFA,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사진: 박예린. (우)


네 번째 갤러리(G4)의 주라 셔스트(Jura Shust)는 버려진 크리스마스 트리 여덟 그루를 담은 금속 통, 그리고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모인 8명의 벨라루스 난민들이 벌이는 슬라브족 전통 하지 축제 ‘쿠팔라’ 의식을 치르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여준다[도판 4,5]. 자연과의 매개를 통한 과거의 주술적 의식과 현대의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병치이다.4 한편 같은 갤러리의 맞은 편에 위치한 타비타 르제르(Tabita Rezaire)의 작품을 위해서 관람객들은 벌집을 닮은 구조물 (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모계 사회를 이룬다) 안에 들어가 영상을 본다[도판 6,7]. 남아프리카의 환상열석을 매개로 인류와 우주의 연결고리를 비선형적으로 연결짓는 르제르의 작품은, 같은 갤러리의 조세파 응잠(Josèfa Ntjam)의 작품 속 수생진균 생물 ‘미세아쿠아 비테(Myceaqua Vitae)’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 아프로-에코-페미니즘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도판 6] 타비타 르제르, 〈궤도 디아파종〉(부분), 2021, 비디오 설치(목조 돔, 의료용 솜),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가변 크기(44분 44초, 연속재생). 후원: 프랑스문화원, 프로젝터 협찬: LG. 사진: 박예린. (좌)

[도판 7] 타비타 르제르, 〈궤도 디아파종〉, 2021, 비디오 설치(목조 돔, 의료용 솜),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가변 크기(44분 44초, 연속재생). 후원: 프랑스문화원, 프로젝터 협찬: LG. 사진: 박예린. (우)


이미 핼 포스터가 「민족지학자로서의 예술가? The Artist as Ethnographer?」(1995)에서 타자에 대한 원시주의적 환상과 민족지학자 혹은 인류학자로서의 예술가가 범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룬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재난들과 갈등이 난무한 세계에서 지금은 다를 수도 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큐레이터 제이드 바르제와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이 나눈 대담에서 호미 바바와 박은선의 실천을 경유하여, 이 말을 인용하고 싶다.


“호미 바바는 이렇게 말했죠. “정치적 글쓰기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이를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으로 구분할 때 각각의 글쓰기가 가진 효과는 희석된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정치적 성숙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파업 조직과 관련된 전단지에 이론이 부족하다는 뜻도, 이데올로기 이론에 관한 사변적 논문이 실제 사례와 적용 가능성을 포함해야 한 다는 뜻도 아니다. 전단지는 구체적 설명, 조직적 목적과 함께 파업이라는 사건에 시간적으로 묶여 있다. 반면 이데올로기 이론은 파업할 권리를 알리며 이를 둘러싼 정치적 사상과 원칙을 내재한다. 이론적 글쓰기는 실천적 글쓰기를 정당화하지도, 반드시 선행하지도 않는다. 이론적 글쓰기는 실천적 글쓰기와 나란히 가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가능하게 한다. 정치라는 흔치 않은 맥락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호학적 비유를 빌리자면, 마치 종이의 앞면과 뒷면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정치적 활동이 분리될 수 있다고, 혹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술의 이면에 운동이 있고 운동의 이면에 예술이 있죠. 이런 점과 무관하고자 하는 일부 예술판이나 운동판에서 저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건 문제이지만, 사실 대단히 개의치는 않아요. 리슨투더시티는 법과 규제를 바꾼다, 그게 중요하니까요. 우리는 끊임없는 불협화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5


[도판 8] 해리슨 피어스, 〈원자가〉, 2024, 모듈형 키네틱 조각 및 사운드 설치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강, 실리콘, 나일론, 공압 자동화 시스템, 사운드 시스템), 가변 설치, 10분.작가 제공.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후원: 영국문화원. 지원: GNYP갤러리. 스티븐 앳킨슨이 작곡한 오리지널 악보. 사진: 박예린.


Writer 박예린(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매체로서의 작품과 신체가 맞닿는 역사적이고 동시대적인 순간들에 주목하여 전시를 만들고 글을 쓴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시각성을 다루는 전시로 《제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아마도예술공간, 2024)에 기획자로 참여하였다. 느슨한 연결망을 지향하며 동료들과 함께 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를 발행하고 있으며, 비평의 과정과 결과를 전시 《레테 rete》(서교예술실험센터, 2023, 공동기획)을 통해 실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광주비엔날레재단 전시팀 코디네이터로서 제15회 광주비엔날레의 온/오프라인 출판물을 관리하였다. 


1 Nicolas Bourriaud, “COACTIVITY, Notes for “The Great Acceleration”,” 2014 Taipei Biennial, https://www.taipeibiennial.org/2014/en/tb20142c65.html (2024.9.14. 최초 검색)

2 Lina Kavaliunas, “Occupy the world: Seminal art Theorist Nicolas Bourriaud on Art in the New Machine Age,” HERO, Oct, 2014. https://hero-magazine.com/article/%2030520/occupy-the-world-seminal-art-theorist-nicolas-bourriaud-on-art-in-the-age%20-of-machine (2024.9.14. 최초 검색) 

3 Nicolas Bourriaud, Inclusions: Aesthetics of the Capitalocene, London: Sternberg Press, 2022.

4 니콜라 부리오, 소피아 박 외,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가이드북』, (광주: 광주비엔날레, 2024), 139. 

5 니콜라 부리오, 소피아 박 외,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도록』, (광주: 광주비엔날레, 2024), 1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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