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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파도를 맞는 중

독립 기획자 최은총
2024-09-03

아마도예술공간/연구소 “제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부르르 Brrr》”(2024) 전시 전경 (사진 제공: CJYART STUDIO(조준용))


“함께 달리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획을 하면서 기획자로 이름을 올리지만, 혼자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항상 통감해요.”


Q 어릴 때부터 기획자가 되고 싶으셨나요? 

학부생 시절 운 좋게도 현대미술 작가님의 어시스턴트로 지내며 작품을 제작하거나 국내 유수의 기관에서 열리는 전시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되는지 가까이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전시 기획자란 꿈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레 석사를 미술사학과로 진학하게 된 게 시작이었습니다.사실 내부자가 아닌 이상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는 어려운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이 과정을 보면서 작품을 전시 장소에 옮기는 일, 가벽을 세우고 동선을 만들고, 여러 장비를 설치하는 등 전시란 많은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특히 전체를 조율하고 기획하는 전시 기획자가 멋있어 보였고, 일이 재미있어 보여 자연스럽게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10의 n승 《도전! 실버벨: 홍연길 프로젝트 The Silver Bell Challenge: Hong Yeon-gil Project》 쇼케이스 전경 (사진 제공: 도재인)


Q 학부에서는 영상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언어나 문화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저처럼 실기를 전공한 분들도 있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획할 때 큰 장점이라 생각해요. 저도 동양화와 영상을 다루었기에 작가님들의 활동과 관점에 공감할 수 있고, 전시 제작이나 설치에 관한 프로세스를 알기 때문에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아마도예술공간/연구소 “제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부르르 Brrr》”(2024) 전시 전경 (사진 제공: CJYART STUDIO(조준용))


Q 지금까지 어떤 전시를 기획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아마도예술공간의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요.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은 기획자와 작가가 공동으로 기획서를 작성해 선정된 팀이 전시를 선보이는 공모에요. 저는 양하 작가님과 함께 재난 문자가 남기고 간 떨림을 정동적으로 바라본 《부르르 Brrr》란 전시를 기획했어요. 해외에 계신 작가님과 시차를 극복하며 긴 시간 같이 고민해 준비한 전시라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토탈미술관이 주최, 주관한 프로그램 <화원(畵院):홍연길>에 참여했어요. 《도전! 실버벨: 홍연길 프로젝트》는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한 온라인 전시로 지역과 세대의 분리를 예술로 엮어내고자 기획했던 전시입니다.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작가들과 기획자가 ‘아바타(ABT)’라는 팀을 구성해 6개월간 서울 연희동 홍연길의 노인과 교류하며 진행한 뉴미디어 예술 프로젝트에요.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며 뉴미디어 기기와 소프트웨어 경험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접근성이 용이한 전시와 작품의 형태를 고민했어요. 이를 위해 미술관에 물리적 접근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실버벨' 안드로이드 어플을 개발했어요. 홍연길 주민분들께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해 오프라인 쇼케이스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기획으로 해외 연수 기회를 받아 멘토님들과 함께 독일로 연수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구.담비의 차실  《묘미卯味》(2023)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최은총)


Q 기획자라는 직업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시나요? 

기획은 또 다른 창작의 영역이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작가의 작품이 탄생한 곳과 떨어진 시공간에서 관객과 만나게 하려 연출을 행하는 거죠. 제 아이디어를 작가님과 공유하며 전시를 만들어 갈 때 가장 큰 만족과 재미를 느끼곤 합니다.


Q 전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누군가와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획을 하면서 기획자로 이름을 올리지만, 사실 혼자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항상 통감해요. 주변에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어요. 서로 응원하고 도움 주고 대화하다 보면 그게 맞물려서 시너지를 내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10의 n승 《도전! 실버벨: 홍연길 프로젝트 The Silver Bell Challenge: Hong Yeon-gil Project》 쇼케이스 전경 (사진 제공: 도재인)


Q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요? 

평소에도 사회 문제에 관해 관심이 많은데요, 역사적 사건들 혹은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문제만 아니라 제 일상생활에서 마주치거나 체감하는 사회의 모순들을 발견할 때 이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한 재난 문자에 관한 전시 《부르르 Brrr》도 비슷한 경우예요. 그 당시에도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전시로 연결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이후로도 날씨나 실종으로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오는 재난 문자가 울리면 순간 꼼짝도 못 할 만큼 공포가 밀려오더라고요. 특히 공공장소에서 동시에 울리는 진동 소리를 느낄 때면 이런 공포는 더 증폭되었어요. 혼자 진동 소리에 놀라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문자를 확인하고 바로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움직이더라고요. 이 사건을 담아두다 전시로 이어진 것 같아요.


양하, <상대적 맑은 그림_3>, 2024, 나무, 떨어진 가짜 철 새, 빨간 조명, 2채널 사운드(8시간), 가변설치 경계경보를 알리는 재난문자를 받은 날의 기억에서 착안한 작업 (사진 제공: CJYART STUDIO(조준용))


Q 최근에는 동료들과 비평 뉴스레터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석사 코스웍 시절 함께 공부한 동료들과 2023년부터 비평 뉴스레터 플랫폼 ‘에포케 레테’를 발행하게 되었어요. 현재 8명의 필진이 공동 운영 및 발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에포케 레테는 동료들끼리 진행한 비평 스터디에서 발전했어요. 필진 중 4명이 함께 다양한 주제로 장기간 스터디를 진행했는데요. 에포케 레테는 그중 한 스터디 였어요. 처음에는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비평에 대해 함께 고찰하는 식으로 진행하다가, 이후에는 동시대 미술에 관한 경향/전시/작가에 대한 비평으로 방향을 전환했어요. 그렇게 4명이 시작한 소규모 스터디에서, 6명이 되고, 지금은 8명이 되었어요. 최근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x 미술사학과 교류모임 ‘블록메이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스타팅 블록: 비평교류'의 결과물을 발행했어요. 소수의 인원에서 시작한 에포케 레테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여러 필진의 글을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가 뿌듯한 마음입니다.


홍천미술관 《플랜티 하우스 Plan-t House》(2024) 전시 전경 (사진 제공: 박현진)


Q 실기를 전공하셨지만 전시 기획자로서 새로운 길을 시작하셨는데요. 요즘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전시 기획자는 동시대 시류를 기민하게 읽고 응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연구를 동반한 전문성의 함양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기술 매체와 퍼포먼스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전문성을 키우고 있어요. 아직은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 만족스러운 대답에 도달하기에는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질문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임하려고 하고 있어요.


머리맡 책장 속에 있는 책 한 권 (사진 제공: 최은총)


머리맡 책장 속에 있는 책 한 권 (사진 제공: 최은총)


Q 기획자의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도움이 된 책 한 권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제 침대 옆 책장에 큐레이토리얼에 대한 책들을 두면서 보곤 해요. 아직 부족해 기본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자칫 진행하던 일에 걱정이 들 때 혹은 이다음을 모르겠을 때 들여다보는 편이에요. 이론이나 담론적인 글들도 있지만, 준비 과정이나 실행, 운영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주는 책들도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중에서 에이드리언 조지의 『큐레이터: 이 시대의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길』(2016)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 읽었을 때는 전시 기획자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았고,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전시 기획 과정 중에 필요한 양식과 팁을 볼 수 있어 많은 참고가 되었어요. 토탈미술관 <화원(畵院):홍연길>에 참여할 때, 신보슬 큐레이터님에게 ‘큐레이터의 툴박스' 수업을 들을 때도 생각나기도 했고요.

해당 프로그램에서 운 좋게도 독일 연수의 기회를 얻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뷔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WKV)의 전시 제작실을 볼 수 있었는데요. 거기에 온갖 종류의 공구와 전시 기물이 있더라고요. 공동 디렉터 중 한 분인 한스 디 크리스트(Hans d. christ)가 직접 투어를 해 주셨는데, “전시는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그런 면에서 위 책이 전시를 만드는 데에는 그 배후에 수많은 행정 절차, 몸으로 만들고 설치하는 여러 작업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해요.


2023년 토탈미술관 <화원(畵院):홍연길>의 해외 연수 당시 진행된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뷔템베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WKV) 공동 디렉터 한스 디 크리스트와의 전시장 투어 (사진 제공: 최은총)


Q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전시가 열리는 날, 축하해주러 오셨던 작가님들과 기획자님들께 너무 감사했어요. 저에게 의미가 깊은 전시라 말씀드리면서 초대했는데, 그래서 와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바쁘신 분들인데 그 하루를 써주셨다는 게 굉장히 의미 깊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작가님과 조촐하게 치른 뒤풀이도 기억에 남네요.

아마도예술공간/연구소 “제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부르르 Brrr》”(2024) 전시 전경 (사진 제공: CJYART STUDIO(조준용))


Q 1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제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연구하고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게 제 꿈이고 목표이자 계획인 것 같습니다. 특히 독일 베를린에 있는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의 전시 팀에 참여해 보고 싶어요. 트랜스미디알레는 30년이 넘은 미디어 예술 축제이고, 미디어 작품에 대한 고찰과 함께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제시하고 있어요. 저도 급변하는 기술들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전시나 작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런 기술에 대해 일방적인 낙관도, 전적인 비판도 어려운 시점인 것 같아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언젠가 전시로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THISCOMESFROM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지내고 있을 거라 상상해 보질 못했어요. 무모한 도전에 함께 해주고 믿어준 동료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고, 혹여나 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있으면 편하게 연락해 주시면 좋겠어요.


독립 기획자 최은총 ©Thiscomesfrom 


독립 기획자 최은총은 동시대 기술 매체와 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비가시적인 감정, 감각, 분위기,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 프로듀싱, 전시 기획, 비평, 프로젝트 매니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현재 2024 광주비엔날레 전문기획자 양성 프로그램 현장 코디네이터와 2024 포항 융복합예술 실험실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이다. EMAPx FRIEZE FILM 2024 연계 전시 《중간에서 만나 Meeting Halfway》 에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며, 2024 트라이보울 초이스에 박예린과 선정되어 김상돈, 강재원, 정소영 작가와 함께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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