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2026. Photo: Joel Moritz.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
서울시 성동구의 더페이지갤러리가 프랑스 디종의 콩소르시움 미술관(Consortium Museum)과 함께 《Up Against the Walls!》를 2026년 8월 26일부터 10월 10일까지 선보인다. 콩소르시움 미술관 공동 디렉터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1977년 설립된 기관의 지난 50년과 다가올 50년을 하나의 시간축 위에 놓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장으로서, ‘1977–2027–2077’이라는 세 개의 연도를 통해 설립 50주년을 과거의 기록으로 마무리하기보다 현재를 거쳐 100주년이라는 미래까지 이어지는 진행형의 역사로 바라본다.
1977년 설립된 콩소르시움 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일찍 포착하고 작가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오면서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구축해왔으며, 1980년대에는 신디 셔먼, 리처드 프린스, 존 암리더 등을 프랑스에 소개한 데 이어 1990년대부터는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마우리치오 카텔란, 우고 론디노네 등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동시대 미술의 주요 장면과 관계를 확장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미술관 내부의 전시에만 머물지 않고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2003년 제7회 리옹 비엔날레,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비롯해 릴 유럽문화수도, 발렌시아 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등 국제 전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며, 이후에는 도하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장소특정적 커미션 등을 통해 활동 무대를 미술관 밖으로 넓혀왔다. 이와 함께 출판사 레 프레스 뒤 레엘(Les presses du réel)과 영화제작사 안나 샌더스 필름(Anna Sanders Films)을 운영하며 출판과 영화 제작을 아우르는 활동까지 이어가고 있다.
콩소르시움은 50주년을 하나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정리하기보다 세계 각지의 갤러리와 기관과 협업하면서 지난 역사를 새로운 장소와 형식으로 다시 펼쳐 보이는 방식을 택했으며,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역시 미술관의 아카이브나 과거의 기록을 나열하는 대신 오랜 시간 콩소르시움과 관계를 맺어온 작가부터 현재 함께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까지 총 9명을 서울로 불러들여 이들의 작업을 통해 기관이 축적해온 시간을 현재의 시점에서 살펴본다. 이는 물리적인 미술관 공간에 활동을 한정하지 않고 여러 도시와 기관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해온 콩소르시움의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동시대의 변화와 시대정신을 작업과 전시를 통해 포착해온 이들의 태도를 서울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이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협업을 구체화한 출발점에는 ‘벽’이 있다. 더페이지갤러리가 상업 갤러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벽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작업에 주목해 전시를 제안하면서 프로젝트가 구체화됐으며, 이는 작품과 공간, 전시 형식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실험해온 콩소르시움의 역사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콩소르시움은 이미 1993년 바닥에 놓이거나 기대어진 작품을 중심으로 한 《Pièces au sol(바닥에 놓인 작품들)》을 개최하고, 1998년에는 이에 대응하는 《Tableaux aux murs(벽에 걸린 회화들)》을 선보인 바 있으며,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는 《Up Against the Walls!》를 이 두 전시에서 시작된 작품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오늘의 전시장 안에서 다시 구현하는 또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2026. Photo: Jeon Byung Cheol.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 Nathalie Du Pasquier.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벽은 작품을 설치하기 위한 단순한 배경을 넘어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적극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벽화와 벽지, 포스터, 회화,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이 벽을 직접 점유하거나 그 일부가 되면서 전시장 전체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벽은 건축과 작품, 회화와 장식, 이미지와 공간이 서로 만나는 접점으로 작동한다. 작품이 벽 위에 놓이는 데 그치지 않고 벽과 함께 하나의 공간적 장면을 구성하면서 관람객 역시 개별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전시 환경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와 경험으로 바라보게 된다.
전시 제목인 《Up Against the Walls!》에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급진적인 반문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참조가 함께 담겨 있다.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는 당시 예술과 정치, 제도와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예술·정치 집단 블랙 마스크(Black Mask)와 그로부터 이어진 반문화운동의 흐름인 ‘Up Against the Wall Motherfuckers(UAW/MF)’를 제목의 배경으로 언급하며, 여기에 상대를 벽으로 몰아세우는 명령형 표현인 ‘up against the wall’이 지닌 강압적이고 도발적인 뉘앙스가 더해진다고 설명한다. 이들에게 벽은 작품을 제한하고 가로막는 ‘적(enemy)’인 동시에 작품이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협업의 파트너(collaborative partner)’이기도 하며, 따라서 전시 제목은 벽에 몰린다는 수세적인 상황과 벽에 맞서고 그것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능동적인 태도를 동시에 함축한다.
이번 전시에는 콩소르시움과 서로 다른 시간과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온 9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자의 작업 언어를 통해 벽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존 암리더와 실비 플뢰리는 오랜 시간 이어온 벽 작업에 대한 탐구를 이번 전시장에 적용하고, 나탈리 뒤 파스키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벽면과 그 위에 배치된 소형 회화를 하나의 구성으로 연결하며, 비비안 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벽지 위에 회화를 설치해 이미지와 장식, 표면 사이의 관계를 확장한다. M/M (파리)는 두 전시장을 연결하는 복도를 포스터로 채워 통로 자체를 하나의 이미지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관람객의 이동 동선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2026. Untitled (FS 203), 1988. Truck spoiler and acrylic on canvas. Canvas: 305 x 183 cm, Spoiler: 112 x 164 x 30 cm.
Courtesy of John Armleder Studio. Photo: Jeon Byung Cheol © John Armleder.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
우고 론디노네는 고인이 된 파트너이자 예술가인 존 조르노가 시 〈thanx 4 nothing〉을 낭독하는 영상을 서로 마주 보는 두 벽에 투사해 하나의 목소리와 두 개의 이미지가 공간 전체를 구성하도록 하며, 이사벨라 두크로트의 대형 종이 작업과 앙헬라 페라리의 대형 삼면화, 장-마리 아프리우의 조각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벽과 공간에 개입하면서 작품과 건축 사이의 관계를 확장한다. 서로 다른 매체와 형식으로 제작된 작업들이 벽이라는 공통된 조건을 매개로 하나의 전시장 안에 놓이면서, 이번 전시는 작품 자체의 개별적인 특성뿐 아니라 작품이 공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함께 드러낸다.
9명의 작가가 하나의 전시 안에서 만나는 방식은 콩소르시움이 지난 50년 동안 작가들과 맺어온 관계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983년부터 20회 이상 콩소르시움의 전시에 참여해온 존 암리더부터 2026년 현재 콩소르시움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앙헬라 페라리까지 작가들의 세대와 국적, 매체와 작업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특정한 양식이나 미학적 경향이 아니라 작가와의 관계를 새로운 전시와 작업으로 계속 발전시켜온 콩소르시움의 방식이다.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가 이를 가족이나 고정된 공동체가 아닌 “자유로운 정신들의 자유로운 결합”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같은 관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하나의 선언이나 규칙 아래 모이는 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황을 계기로 다시 만나 협업하는 유연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콩소르시움은 지난 50년 동안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전시와 프로젝트를 만들어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 관계의 축적을 서로 다른 세대와 국적, 작업 방식을 가진 작가들의 현재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 콩소르시움 미술관의 50년은 과거 어느 시점에 완성된 기관의 역사가 아니라 새로운 장소와 작가,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계속해서 갱신되는 관계의 역사이며, ‘1977–2027–2077’이라는 시간축 역시 이러한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강조한다.
결국 《Up Against the Walls!》가 바라보는 벽은 전시장을 둘러싼 물리적인 구조물을 넘어 작품과 공간 사이의 경계이자 작품을 규정하는 조건이며, 동시에 작품이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더페이지갤러리와 콩소르시움의 협업 역시 서로 다른 기관과 작가, 기획자가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장소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지속될 수 있는 협업의 구조를 모색하는 가변적인 형태로 이어지며, 콩소르시움 미술관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향후 여러 지역과 기관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로 확장될 예정이다. 50년의 역사를 지나 2077년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바라보는 이번 프로젝트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작품을 둘러싸고 있던 벽은 어디까지 경계로 남고, 어디서부터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Edited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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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2026. Photo: Joel Moritz.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
서울시 성동구의 더페이지갤러리가 프랑스 디종의 콩소르시움 미술관(Consortium Museum)과 함께 《Up Against the Walls!》를 2026년 8월 26일부터 10월 10일까지 선보인다. 콩소르시움 미술관 공동 디렉터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1977년 설립된 기관의 지난 50년과 다가올 50년을 하나의 시간축 위에 놓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장으로서, ‘1977–2027–2077’이라는 세 개의 연도를 통해 설립 50주년을 과거의 기록으로 마무리하기보다 현재를 거쳐 100주년이라는 미래까지 이어지는 진행형의 역사로 바라본다.
1977년 설립된 콩소르시움 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일찍 포착하고 작가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오면서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구축해왔으며, 1980년대에는 신디 셔먼, 리처드 프린스, 존 암리더 등을 프랑스에 소개한 데 이어 1990년대부터는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마우리치오 카텔란, 우고 론디노네 등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동시대 미술의 주요 장면과 관계를 확장해왔다. 이러한 활동은 미술관 내부의 전시에만 머물지 않고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2003년 제7회 리옹 비엔날레,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비롯해 릴 유럽문화수도, 발렌시아 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등 국제 전시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며, 이후에는 도하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장소특정적 커미션 등을 통해 활동 무대를 미술관 밖으로 넓혀왔다. 이와 함께 출판사 레 프레스 뒤 레엘(Les presses du réel)과 영화제작사 안나 샌더스 필름(Anna Sanders Films)을 운영하며 출판과 영화 제작을 아우르는 활동까지 이어가고 있다.
콩소르시움은 50주년을 하나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정리하기보다 세계 각지의 갤러리와 기관과 협업하면서 지난 역사를 새로운 장소와 형식으로 다시 펼쳐 보이는 방식을 택했으며,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역시 미술관의 아카이브나 과거의 기록을 나열하는 대신 오랜 시간 콩소르시움과 관계를 맺어온 작가부터 현재 함께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까지 총 9명을 서울로 불러들여 이들의 작업을 통해 기관이 축적해온 시간을 현재의 시점에서 살펴본다. 이는 물리적인 미술관 공간에 활동을 한정하지 않고 여러 도시와 기관에서 프로젝트를 전개해온 콩소르시움의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동시대의 변화와 시대정신을 작업과 전시를 통해 포착해온 이들의 태도를 서울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이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협업을 구체화한 출발점에는 ‘벽’이 있다. 더페이지갤러리가 상업 갤러리에서는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벽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작업에 주목해 전시를 제안하면서 프로젝트가 구체화됐으며, 이는 작품과 공간, 전시 형식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실험해온 콩소르시움의 역사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콩소르시움은 이미 1993년 바닥에 놓이거나 기대어진 작품을 중심으로 한 《Pièces au sol(바닥에 놓인 작품들)》을 개최하고, 1998년에는 이에 대응하는 《Tableaux aux murs(벽에 걸린 회화들)》을 선보인 바 있으며,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는 《Up Against the Walls!》를 이 두 전시에서 시작된 작품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오늘의 전시장 안에서 다시 구현하는 또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2026. Photo: Jeon Byung Cheol.
Courtesy of The Page Gallery and the artist. © Nathalie Du Pasquier.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벽은 작품을 설치하기 위한 단순한 배경을 넘어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적극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벽화와 벽지, 포스터, 회화,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이 벽을 직접 점유하거나 그 일부가 되면서 전시장 전체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이 과정에서 벽은 건축과 작품, 회화와 장식, 이미지와 공간이 서로 만나는 접점으로 작동한다. 작품이 벽 위에 놓이는 데 그치지 않고 벽과 함께 하나의 공간적 장면을 구성하면서 관람객 역시 개별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전시 환경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와 경험으로 바라보게 된다.
전시 제목인 《Up Against the Walls!》에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급진적인 반문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참조가 함께 담겨 있다.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는 당시 예술과 정치, 제도와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예술·정치 집단 블랙 마스크(Black Mask)와 그로부터 이어진 반문화운동의 흐름인 ‘Up Against the Wall Motherfuckers(UAW/MF)’를 제목의 배경으로 언급하며, 여기에 상대를 벽으로 몰아세우는 명령형 표현인 ‘up against the wall’이 지닌 강압적이고 도발적인 뉘앙스가 더해진다고 설명한다. 이들에게 벽은 작품을 제한하고 가로막는 ‘적(enemy)’인 동시에 작품이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협업의 파트너(collaborative partner)’이기도 하며, 따라서 전시 제목은 벽에 몰린다는 수세적인 상황과 벽에 맞서고 그것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능동적인 태도를 동시에 함축한다.
이번 전시에는 콩소르시움과 서로 다른 시간과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온 9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자의 작업 언어를 통해 벽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존 암리더와 실비 플뢰리는 오랜 시간 이어온 벽 작업에 대한 탐구를 이번 전시장에 적용하고, 나탈리 뒤 파스키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벽면과 그 위에 배치된 소형 회화를 하나의 구성으로 연결하며, 비비안 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벽지 위에 회화를 설치해 이미지와 장식, 표면 사이의 관계를 확장한다. M/M (파리)는 두 전시장을 연결하는 복도를 포스터로 채워 통로 자체를 하나의 이미지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관람객의 이동 동선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 전시 전경, 2026. Untitled (FS 203), 1988. Truck spoiler and acrylic on canvas. Canvas: 305 x 183 cm, Spoiler: 112 x 164 x 30 cm.
Courtesy of John Armleder Studio. Photo: Jeon Byung Cheol © John Armleder.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
우고 론디노네는 고인이 된 파트너이자 예술가인 존 조르노가 시 〈thanx 4 nothing〉을 낭독하는 영상을 서로 마주 보는 두 벽에 투사해 하나의 목소리와 두 개의 이미지가 공간 전체를 구성하도록 하며, 이사벨라 두크로트의 대형 종이 작업과 앙헬라 페라리의 대형 삼면화, 장-마리 아프리우의 조각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벽과 공간에 개입하면서 작품과 건축 사이의 관계를 확장한다. 서로 다른 매체와 형식으로 제작된 작업들이 벽이라는 공통된 조건을 매개로 하나의 전시장 안에 놓이면서, 이번 전시는 작품 자체의 개별적인 특성뿐 아니라 작품이 공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함께 드러낸다.
9명의 작가가 하나의 전시 안에서 만나는 방식은 콩소르시움이 지난 50년 동안 작가들과 맺어온 관계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983년부터 20회 이상 콩소르시움의 전시에 참여해온 존 암리더부터 2026년 현재 콩소르시움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앙헬라 페라리까지 작가들의 세대와 국적, 매체와 작업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특정한 양식이나 미학적 경향이 아니라 작가와의 관계를 새로운 전시와 작업으로 계속 발전시켜온 콩소르시움의 방식이다.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가 이를 가족이나 고정된 공동체가 아닌 “자유로운 정신들의 자유로운 결합”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같은 관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하나의 선언이나 규칙 아래 모이는 집단이 아니라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황을 계기로 다시 만나 협업하는 유연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콩소르시움은 지난 50년 동안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전시와 프로젝트를 만들어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 관계의 축적을 서로 다른 세대와 국적, 작업 방식을 가진 작가들의 현재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결국 콩소르시움 미술관의 50년은 과거 어느 시점에 완성된 기관의 역사가 아니라 새로운 장소와 작가,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계속해서 갱신되는 관계의 역사이며, ‘1977–2027–2077’이라는 시간축 역시 이러한 현재진행형의 성격을 강조한다.
결국 《Up Against the Walls!》가 바라보는 벽은 전시장을 둘러싼 물리적인 구조물을 넘어 작품과 공간 사이의 경계이자 작품을 규정하는 조건이며, 동시에 작품이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더페이지갤러리와 콩소르시움의 협업 역시 서로 다른 기관과 작가, 기획자가 각자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장소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지속될 수 있는 협업의 구조를 모색하는 가변적인 형태로 이어지며, 콩소르시움 미술관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향후 여러 지역과 기관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로 확장될 예정이다. 50년의 역사를 지나 2077년이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바라보는 이번 프로젝트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작품을 둘러싸고 있던 벽은 어디까지 경계로 남고, 어디서부터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Edited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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