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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고 또 걷어낸 물감, 세상의 창이 되다… 화이트 큐브 서울, 마리나 라인간츠 한국 첫 개인전 《Míope(편린)》 개최

김민주
2026-09-11

beb19c7ee42e7.jpegMarina Rheingantz, <Pipa>, 2026, Oil on canvas, 230 x 340 cm|90 1/2 x 133 3/4 in. © Marina Rheingantz. Photo © White Cube (Theo Christelis). 

(사진 제공: 화이트 큐브 서울)


화이트 큐브 서울은 브라질 작가 마리나 라인간츠(Marina Rheingantz)의 한국 첫 개인전 《Míope(편린)》을 9월 1일부터 10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지난 1년간 상파울루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신작 14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제5회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열리는 전시로, 같은 기간 프리즈 서울 화이트 큐브 부스에서도 라인간츠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983년 브라질 아라라콰라에서 태어난 라인간츠는 현재 상파울루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가족이 소유한 인근 농장에서 보낸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를 형성한 중요한 배경이 됐다. 고향의 자연환경에서 받은 인상을 회화와 섬유 작업으로 풀어온 작가는 현실과 상상 속 장소에 대한 기억을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하기보다 서로 겹쳐지는 파편적인 이미지로 화면에 담아왔다. 브라질의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과 수변 장면, 실내 공간 등이 한 화면 안에서 뒤섞이면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장면으로 이어진다.


라인간츠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반복적인 덧칠과 제거를 통해 변화하는 상태로 만들어낸다. 물감이 여러 겹 쌓이고 다시 걷어지는 과정에서 색과 형상은 선명해졌다가 흐려지고, 일부는 다시 드러나거나 화면 속으로 사라진다. 이 같은 작업 과정은 오랜 시간 침식과 퇴적을 거친 지형처럼 화면에 여러 층의 흔적을 남기며, 하나의 형상 역시 고정된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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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서울 《Míope(편린)》 전시 전경 © Marina Rheingantz. Photo © White Cube (Jeon Byung Cheol)

(사진 제공: 화이트 큐브 서울)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추상적인 화면을 통해 거시적인 풍경과 세부적인 형상을 오가는 시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형상 역시 완결된 형태로 제시되지 않으며, 관람자가 화면을 바라보는 위치와 시선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다. 선명한 부분과 흐릿한 부분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면서 시선이 이동할 때 형상이 해체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명인 〈Míope〉(2026)는 포르투갈어로 ‘근시’를 뜻한다. 작품에는 식물을 연상시키는 파편적인 형태가 섬세한 붓질로 배치돼 있으며, 또렷하게 포착되는 부분과 안개 속에 잠긴 듯 흐릿한 영역이 함께 놓인다. 일부 형상은 반복되고 겹쳐지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규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화면 안에서 계속 초점을 옮기며 서로 다른 층위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Pipa〉(2026)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풍경이 이어진다. 연분홍빛 화면 중앙에는 구름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이 놓이고 주변에는 식물의 흔적처럼 보이는 요소가 흩어져 있다. 처음에는 공중에 떠 있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잎과 씨앗, 줄기와 꽃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나타나면서 시선이 다시 지면으로 향한다. 화면 안에서 지평선이나 앞뒤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사라지면서 관람자는 하나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풍경의 여러 지점을 오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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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서울 《Míope(편린)》 전시 전경 © Marina Rheingantz. Photo © White Cube (Jeon Byung Cheol)

(사진 제공: 화이트 큐브 서울)


라인간츠는 유화와 수채화,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며 자연 세계뿐 아니라 프랑스 나비파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의 실내 장면, 고대 유물과 교회 프레스코화 등에서도 작업의 영감을 얻는다. 작가는 회화를 시작하던 시기의 작업이 자신이 성장한 풍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고 회고하며, 당시 경험한 광야와 자유로움의 감각에 깊이 매료됐다고 말한다. 최근 작업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특정 장소를 재현한 풍경이라기보다 자신이 ‘보고, 감각하고, 기억한’ 장소에 대한 이미지로 변주되고 있다.


작품의 표면을 구축하는 방식 역시 라인간츠의 회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Periquita〉, 〈Caracol〉, 〈Taturana〉(2026)에서는 물감을 화면에 스며들게 하는 한편 오일 스틱과 두껍게 올린 물감을 함께 사용한다. 때로는 테레빈유로 안료를 희석해 캔버스 위에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지고 흘러내리도록 한다. 여러 재료와 기법이 겹쳐진 표면은 벗겨진 벽지나 오래된 프레스코화처럼 시간이 흐르며 풍화된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세 작품의 제목은 브라질 토착종에서 가져왔으며, 화면에 축적된 물감의 흔적은 깃털과 털, 껍질, 광물 등이 쌓인 듯한 서로 다른 질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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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서울 《Míope(편린)》 전시 전경 © Marina Rheingantz. Photo © White Cube (Jeon Byung Cheol)

(사진 제공: 화이트 큐브 서울)


이번 개인전은 라인간츠가 2023년 8월 화이트 큐브와 전속 관계를 맺은 이후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는 전시이자, 같은 해 10월 화이트 큐브 메이슨스 야드에서 개최된 전시에 이어지는 두 번째 전시다. 작가는 ICA 밀라노(2025–26), 제15회 광주비엔날레(2024) 등 국제적인 기관에서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포르투 세할베스 미술관, 도쿄 타구치 아트 컬렉션, 파리 피노 컬렉션,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리우데자네이루 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Míope(편린)》은 하나의 풍경을 명확하게 보여주기보다 겹쳐지고 흐려지는 형상과 화면에 축적된 물질적 흔적을 통해 기억된 장소의 모습을 다시 구성한다. 선명한 이미지와 사라지는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서 교차하는 가운데, 라인간츠의 풍경은 특정한 장소를 재현한 장면에서 벗어나 기억과 감각이 겹쳐지는 불확실한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는 그렇게 변화하고 흐려지는 이미지 속에서 우리가 하나의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하는지를 살펴보게 한다.

 

Edited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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