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쉼’을 잊은 도시, 서울에서 ‘Dolce Far Niente’를 외치다 — 파운드리 서울 개관 5주년 기념 기획전 개최

김민주
2026-03-21

0e54afe35609b.jpg

파운드리 서울, 《Dolce Far Niente》, 2026, 사진 고정균.

(사진 제공: 파운드리 서울)


파운드리 서울이 개관 5주년을 맞아 로스앤젤레스 기반 아트 어드바이저이자 큐레이터 이리나 스타크(Irina Stark)와 공동 기획한 그룹전 《Dolce Far Niente》를 3월 21일부터 5월 9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의 제목은 영화 〈Eat, Pray, Love〉 속 한 장면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로마의 한 이발소에 앉아 이탈리아어 교사와 그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이 이탈리아에 온 이후 “특별히 한 일이 없다”며 스스로를 책망한다. 이에 한 이탈리아 남자는 “당신은 미국인이라 즐길 줄 모른다”고 말하며, 또 다른 남자가 그 상태를 가리켜 “우리는 이것을 ‘Dolce Far Niente’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기에 아주 익숙하다”고 설명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조차 생산성과 성취의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 존재 자체를 즐기는 감각. 이 짧은 대화는 오늘날 바쁜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달콤함 (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의 개념인 ‘Dolce Far Niente’를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확장하며, 무위(無爲)를 단순한 휴식이 아닌 감각과 존재를 회복하는 능동적인 상태로 재해석한다. 참여 작가 11인은 회화, 조각, 사진,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멈춤’, ‘지연’, ‘느림’의 감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다. 전시장에 펼쳐진 작업들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와 정보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감정의 미세한 진동, 신체의 움직임, 관계의 긴장, 시간의 축적과 같은 요소들은 작품 속에서 천천히 드러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밀도 높은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이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멈추었을 때 비로소 무엇이 보이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참여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다층적으로 확장된다.

6d2583ebf6e2f.jpg파운드리 서울, 《Dolce Far Niente》, 2026, 사진 고정균.

(사진 제공: 파운드리 서울)


바심 마그디(Basim Magdy) (b. 1977)는 영상 작업 〈13 Essential Rules for Understanding the World〉를 통해 합리성과 질서에 대한 믿음을 유머와 역설로 해체한다. 정치적·사회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작업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드러내며, 이번 전시에서는 결론을 유보한 채 사유의 상태에 머무르는 태도를 제안한다. 엠 케트너(Em Kettner)(b. 1988)는 〈The Birth of a Comedian〉, 〈The Cosmic Joke〉를 통해 난간과 같은 기능적 구조물을 서사적 장치로 전환한다. 관객이 몸을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가야만 드러나는 장면들은 감상의 속도를 늦추며, 신체와 환경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히만 청(Heman Chong)(b. 1977)은 ‘다운타임 페인팅’ 연작을 통해 침묵과 멈춤의 미학을 회화로 번안한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업은 정보 과잉의 시대 속에서 사유의 공백을 생성하는 회화적 실천이다. 이전 작업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축적하는 방식은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화면 위에 물리적으로 드러낸다. 아침 김조은(Joeun Kim Aatchim)(b. 1989)은 〈Long Hesitation〉, 〈Long Pause〉 등을 통해 기억과 감정의 흐름을 ‘초안(draft)’ 상태로 남긴다. 투명한 레이어를 중첩하는 작업 방식은 불완전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며, 상처와 회복, 기록과 화해의 과정을 시각화한다. 그의 작업은 느리고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형성되는 정서적 유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조니 네그론(Jonny Negron)(b. 1985)은 명상적이고 정적인 회화를 통해 ‘자기 돌봄’과 내면의 질서를 탐구한다. 새벽이라는 시간대에 주목한 그의 작업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감각을 포착하며, 〈Reflection〉과 같은 신작에서는 일상의 사소한 행위를 의식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전환한다. 네빈 마무드(Nevine Mahmoud)(b. 1988)는 〈Swing Set〉에서 단단한 재료로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를 구현하며 감각의 역전을 시도한다. 유년의 기억과 성적 은유가 교차하는 이 작업은 익숙한 구조를 낯설게 전환하며, 욕망과 인식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만든다.


파트리시아 이글레시아스 페코(Patricia Iglesias Peco)(b. 1974)는 〈Hibiscos Abajo De La Tierra〉를 통해 생성과 부패가 공존하는 ‘식물적 에로티시즘’을 그려낸다. 그녀의 회화는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탐구하며, 아름다움과 혐오가 뒤섞인 감각의 긴장을 드러낸다. 픽시 랴오(Pixy Liao)(b. 1979)는 사진 연작을 통해 관계와 친밀성의 구조를 실험한다. 파트너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업은 역할과 위계를 전복하며, 일상의 순간을 유희적이면서도 사유적인 장면으로 확장한다.


레이 클라인(Rae Klein)(b. 1995)은 샹들리에와 촛대를 중심으로 한 회화를 통해 빛과 불안, 보호와 위협 사이의 긴장을 포착한다. 그의 작업은 익숙한 오브제를 낯선 맥락에 배치함으로써 존재의 불안정성과 감정의 진동을 드러낸다. 세 오(Se Oh)(b. 1984)는 세라믹 설치를 통해 성장과 회복의 시간을 시각화한다. 미국과 한국의 재료와 기법을 결합한 ‘혼성 정원’은 정체성과 기억의 층위를 담아내며, 연약함 속에 내재된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빅토리아 기트만(Victoria Gitman)(b. 1972) 은 극도로 정밀한 회화를 통해 ‘보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시간 경험으로 전환한다. 모피와 지퍼 같은 표면을 집요하게 재현한 그의 작업은 감상의 속도를 늦추고, 시각과 촉각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7ece0b6b9023f.jpg파운드리 서울, 《Dolce Far Niente》, 2026, 사진 고정균.

(사진 제공: 파운드리 서울)


이번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리나 스타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 ARTnews 선정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무위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각과 시간을 되찾는 행위”라며, “특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관람객들에게 이 전시는 자신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감각과 의미가 다시 생성되는 가장 중요한 상태”라고 덧붙인다.


《Dolce Far Niente》는 ‘쉼’을 소비되는 휴식의 개념에서 끌어내어, 하나의 인식 방식이자 태도로 확장하는 전시다.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빠르게 이해하거나 소비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멈추고, 머무르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감각을 재조율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에서 이 전시는 더욱 선명한 의미를 갖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산하고, 증명해야 하는 삶의 리듬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종종 불안과 결핍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전시는 그 시간을 결핍이 아닌 가능성으로 전환한다. 결국 《Dolce Far Niente》는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공백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감각과 감정, 그리고 존재의 층위가 떠오르는 시간이라고. 그리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과 세계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Edited by 김민주


저작권자 ⓒ Thiscomesfr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HISCOMESFROM

 010-9468-8692

thiscomesfrom.mag@gmail.com

Internet news service business license : 서울, 아55225

26-1002, 192, Garak-ro, Songpa-gu, Seoul, Republic of Korea 

Registration date : 18th Dec 2023

Publisher & Editor : Jaehoon Cheon

Publication date : 1st Apr 2024

Child Protection officer : Jaehoon Cheon

© 2024 THISCOMESFROM.

All Rights Reserved – Registered in Republic of Korea

Use of this site constitutes acceptance of our User Agreement and Privacy Policy.

THISCOMESFROM

26-1002, 192, Garak-ro, Songpa-gu, Seoul, Republic of Korea | 010-9468-8692 | thiscomesfrom.mag@gmail.com

Internet news service business license : 서울, 아55225 | Registration date : 18th Dec 2023 |

Publisher & Editor : Jaehoon Cheon | Publication date : 1st Apr 2024

Child Protection officer : Jaehoon Cheon

© 2024 THISCOMESFROM. All Rights Reserved – Registered in Republic of Korea

Use of this site constitutes acceptance of our User Agreement and Privacy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