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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얼굴들 속에서, 시대의 초상을 마주하다 — 피비갤러리, 함미나 개인전 《바다위 Badawi》 개최

김민주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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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미나, 인간 번데기 The Human Chrysalis, 2025, Oil on canvas, 40.9 X 31.8 cm

(사진 제공: 피비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5-6 1층에 위치한 피비갤러리는 2026년 3월 5일부터 4월 18일까지 함미나 개인전 《바다위 Badawi》를 개최한다. 함미나는 인물 회화를 중심으로 개인적 기억과 정서, 그리고 그것이 축적되는 과정을 꾸준히 탐구해 온 작가다. 그의 작업은 어린 시절의 사건과 이후 이어진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특정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불완전한 기억과 감정의 흔적을 시각화하는 데 가깝다. 대비되는 색감과 강조된 선, 번짐과 공백이 공존하는 화면은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며, 절제되거나 생략된 표정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전시명 ‘바다위 Badawi’는 사막의 유목민을 뜻하는 베두인에서 비롯되었다. 아랍어 ‘يودب(Badawi)’는 한국어로 ‘바다 위’처럼 들리는데, 작가는 이 발음과 문자 형태에서 떠도는 존재의 이미지를 포착했다. 물결 위를 나아가는 배를 연상시키는 글자의 형상은 이동의 이미지와 연결되고, 여기서 ‘이동’은 물리적 움직임이라기보다 삶의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가리키는 은유로 작동한다.


작가는 김기림의 시 「바다와 나비」와 모나크 나비의 이동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도착을 전제하지 않은 여정과 지속되는 삶의 감각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바다를 건너는 나비의 이미지는 반복되는 인물 형상과 겹쳐지며, 불확실한 시간과 감정의 리듬으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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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미나, 인간 번데기 The Human Chrysalis, 2025, Oil on canvas, 40.9 X 31.8 cm (each)

(사진 제공: 피비갤러리)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 번데기〉 연작을 중심으로 〈바다위〉〈날개짓〉 시리즈가 소개된다. 〈인간 번데기〉는 불특정 인물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포착한 작업으로, 나비 표본이나 증명사진, 실종 포스터를 연상시키며 한 존재가 특정한 순간에 고정된 채 기록되는 상태에 주목한다. 〈날개짓〉은 한지를 활용해 화면에 물리적 층위를 더하고, 기억과 현재 사이의 긴장을 확장한다. 반면 〈바다위〉 시리즈에서는 인물이 바다 위를 표류하는 모습이 보다 직접적으로 등장하며, 이동의 감각이 삶의 과정이자 감정의 흐름에 가까운 이미지로 제시된다.

 

재료적 측면에서도 이전 연작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유화에 더해 목탄, 콘테, 파스텔, 한지 등 다양한 재료를 병행하며, 번지고 지워지는 건식 재료의 특성과 종이의 물성은 이미지를 하나의 완결된 결과로 고정하기보다 시간 속의 과정으로 남긴다. 특히 접히거나 구겨진 한지는 화면 위에 물리적인 층위를 형성하며, 얇고 연약한 나비의 날개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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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갤러리, 《함미나: 바다위 (Mina Ham: Badawi)》 전시 전경, 2026.

(사진 제공: 피비갤러리)


전시장에는 세로 40.9cm, 가로 31.8cm의 동일한 크기의 회화 작품들이 벽면을 따라 연속적으로 배치된다. 반복되는 화면의 리듬은 개별 작품을 분절된 장면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게 하며, 이동과 과정, 그리고 이동의 시간이 고정되는 순간이라는 전시의 두 축을 공간 안에서 확장한다. 

《바다위 Badawi》는 반복되는 인물 형상과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전시 구성을 통해 이동과 고정, 현재와 기억 사이의 상태를 보여준다. 길게 이어진 하나의 흐름 속에서 개별 작품은 전시장을 따라 이동하는 관람자의 동선과 맞물리며, 표류하는 존재의 리듬을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때 ‘유목민’이라는 개념은 불확실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며,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사진 및 자료 제공: 피비갤러리 


Edited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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