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토 갤러리,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페이토 갤러리는 2026년 첫 전시로 1월 14일부터 2월 14일까지 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3인展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도자 등 총 2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곡선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학적 가치를 탐구한다. 화면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선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정, 그리고 예술이 건네는 유연한 위로를 마주하는 자리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각진 모서리도,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한 직선도 아니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자유롭고 관능적인 곡선이다.” 라는 건축가 오스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의 문장은 이번 전시를 여는 하나의 감각적 선언처럼 읽힌다. 곡선은 단순한 형태적 선택을 넘어, 삶의 리듬과 세계의 숨결을 시각화하는 본질적인 언어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곡선은 미술사 속에서 자연성과 생명력, 그리고 역동성의 근원적 조형 요소로 작동해 왔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가 S자 곡선을 ‘미의 선(Line of Beauty)’이라 명명하며 그 안에서 생명력을 보았던 것처럼, 직선이 효율과 명확한 목적을 상징한다면 곡선은 시작과 끝의 경계를 유연하게 흐트러뜨리며 그 사이의 과정, 움직임, 그리고 감정의 여운을 호출한다. 현대에 이르러 곡선은 단지 시각적 쾌감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며, 작가의 신체성, 물질의 시간, 사유의 깊이를 담아내는 다층적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페이토 갤러리,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展은 이러한 질문 위에서 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세 작가가 구축해 온 각자의 독자적 세계를 하나의 장면으로 불러낸다. 전시는 곡선이라는 공통된 조형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매체와 미감이 어떻게 교차하고 확장될 수 있는지 탐색한다.
김민석의 작업은 디지털 조형 언어를 아날로그 회화의 물질성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화면 속 매끄러운 디지털 볼륨은 수만 번의 붓질을 거치며 물리적 질량을 획득하고, 이질적인 실존감을 발산한다. 가상의 픽셀 볼륨을 실재적인 촉각적 볼륨으로 치환해내는 그의 곡선은 시대적 무게와 실존의 감각을 담아내며, 관객에게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손끝으로 만지는 듯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가진의 도자 작업은 전통적 청자의 언어를 전복하면서 새로운 공간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담는 기물이라는 기능과 규범을 벗어나, 표면의 질감과 유약의 흐름, 불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곡면의 생명력을 강조한다. 내부를 비우고 표면에 물질적 감각을 축적하는 방식은 도자를 ‘그릇’이 아닌 살아 있는 장면으로 전환시키며, 평면과 입체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조형 경험을 제안한다.
하태임의 곡선은 반복되는 신체의 움직임이 남긴 호흡의 기록에 가깝다. 회전하며 그어 내려간 색의 궤적은 겹겹의 결을 이루며 축적되고, 화면 위에서 하나의 리듬과 선율을 형성한다. 그녀의 곡선은 색채가 가진 감정의 기억을 호출하며, 정교한 질서와 해방된 감정이 공존하는 명상의 장을 만든다.
페이토 갤러리,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이번 전시는 김민석의 압도적 볼륨, 이가진의 청아한 물질성, 하태임의 경쾌한 색채 리듬이 ‘곡선’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나 서로의 세계를 비추는 순간을 보여준다. 화면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 쌓여온 시간과 감정, 그리고 예술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와 마주하게 된다. 《곡선의 미학》展 은 오늘날 곡선이 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감각의 언어인지를 다시 묻는다.
작가 소개
김민석 Minseok Kim (b.1996)

김민석, Van Goghs Still Life, 2025, acrylic on canvas, 53 x 45.5 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김민석은 디지털 툴이 제안하는 무결한 조형미를 아날로그적인 붓질의 밀도로 치환하여 본질이 소외된 시대에 손끝으로 만져질 듯한 ‘입체적 덩어리’를 통해 실존의 무게를 묻는 작가이다. 현대 사회의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파편화하는지 주목하여 작업을 시작한 김민석은 초기에는 벨라스케스나 고야 같은 거장의 화풍을 독학으로 연구하여 페르난도 보테로를 연상케 하는 풍만한 양감을 탐구한다. 곧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자신만이 독창적인 시각언어로 발전시킨 김민석은 마티스의 〈Dance〉나 반고흐의 정물화 등 클래식한 명화의 도상을 차용하되 이를 그래픽 툴의 3D 브러시 툴과 같은 디지털 논리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던 고전적 이미지와 표면적 경험만 남은 현대적 감각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이자 김민석만의 ‘디지털-아날로그 하이브리드’ 회화로 진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김민석 작업의 핵심은 덩어리와 매끄러운 그라데이션에 있다. 언뜻 보면 정교한 디지털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크릴 물감을 수차례 덧바르고 건조하는 지극히 노동집약적인 아날로그적인 회화 과정을 통해 작업을 완성한다. 직접 조색한 물감을 여러 레이어로 겹쳐 쌓아 올리고 평면의 캔버스 위에 실재하는 듯한 입체적인 부피감을 부여한다. 화면 속 인물과 사물, 배경은 올록볼록한 덩어리의 형태로 단순화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실체 없는 픽셀 데이터가 지배하는 현시대에서 회화가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실재감과 물질의 힘을 증명한다.
독학으로 미술의 길을 개척한 김민석은 2024년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더 프리뷰 성수 등 주요 아트페어와 전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마티스의 명작을 오마주한 작품을 선보이며 ‘90년대생 블루칩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의 조형적 단위를 회화적 질감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가상과 실제의 경계에서 현대 회화가 나아갈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이가진 Lee Ka Jin (b.1985)

이가진, Fluidity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전통 청자의 시각 언어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고 두터운 유약의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깊이를 포착하는 이가진은 한국 전통 청자를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초기 〈Waterdrop〉 시리즈에서 도자의 전통적인 상징인 호(壺)의 구조 안에 청자 특유의 비색을 담았다. 점차 ‘그릇’이라는 기능적 범주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 이가진의 작업은 〈Dewdrop〉 시리즈에서 내부 공간을 뒤집어 입구를 없앤 ‘무용한 볼륨’을 창조하고 벽에 거는 설치 작업을 통해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최근 〈Fluidity〉 시리즈에서는 유약을 물감처럼, 흙을 종이처럼 다뤄 도자공예를 현대적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물질의 본질에서 출발해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와 소통이라는 개념적 주제로 나아가는 이가진의 작가적 진화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가진은 보통 얇게 입히는 유약을 덩어리째 두껍게 쌓아 올리는 방식을 통해 청자의 푸른 색감에 입체적인 깊이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가마 속에서 구워지며 흙과 유약이 반응해 만들어내는 우연적인 흐름과 매끄러운 곡선은 작가의 인내와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도자라는 기물의 쓰임새를 상징하는 구멍이나 부피감을 제거한 이가진의 작업은 도자에서 순수한 조형물로 마주하게 된다.
서울대학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가진은 파엔자 국제도자공모전에서 입선, 세계도자비엔날레에서의 수상 등을 통해 국제적인 역량을 인정받았다. 국내외 유수 미술관, 갤러리, 도자 비엔날레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경기도자미술관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 기업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청자를 통해 현대인의 감각과 관계를 담아내는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이가진은 한국 현대 공예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하태임 Ha Taeim (b.1973)
하태임, Un Passage No.254100, 2025, acrylic on canvas, 100 x 100 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하태임은 신체의 궤적이 그려낸 유연한 곡선과 그 속에 겹겹이 쌓인 맑은 색채의 층위를 통해 조형적 리듬감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기억이 흐르는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가다. 199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문자와 기호를 화면에 나열하며 소통의 불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한 하태임은 초기에는 캔버스 위에 일기처럼 써 내려간 문자나 기호적 형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독백을 시각화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점차 언어의 구체적인 지시성은 사라지고 문자는 추상적인 곡선의 형태로 변모하였고, 하태임의 대표적 조형 언어인 ‘컬러밴드(Color Band)’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태임의 작업은 ‘통로(Un Passage)’라는 일관된 주재 아래 수없이 반복되고 중첩되는 색 띠의 향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투명도가 높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수십 번 붓질을 쌓아 올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색의 투명성과 깊이를 캔버스에 담는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컬러 밴드들은 화면 위에서 서로 교차하고 색이 겹쳐지며 시각적인 리듬감과 음악적 선율을 만들어낸다. 컬러 밴드는 단순한 색채의 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이 축적된 시간의 기록이자 감정의 층위다. 맑고 경쾌한 색색의 띠는 지워짐과 동시에 생성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시각적 곡선을 공감각적인 공간으로 치환한.
색채를 통해 감각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하태임의 컬러 밴드는 고유한 감정을 상징한다. 컬러 밴드로 이루어진 화면은 고정된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열린 구조로써 화면 위 색채의 통로를 따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소통(Passage)이 완성된다. 오직 색과 면, 선의 조화로만 구성된 하태임의 회화는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순수한 미적 체험의 순간을 선사한다.
프랑스 파리 국립 미술학교(ENSBA)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미술학 박사를 취득한 하태임은 1995년 개인전을 시작하여 서울, 파리, 베이징, 독일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며 독보적 입지를 다져왔다. 1999년 모나코 국제 현대 회화전에서 ‘모나코 왕국’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가구, 와인, 향수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회화의 영역을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모나코 현대미술관, 아모레 뮤지엄, 삼성전자 등 국내외 기관, 갤러리, 미술관 등 다양한 곳에 소장되고 있다.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전시 포스터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자료 제공: 페이토 갤러리
Edited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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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페이토 갤러리는 2026년 첫 전시로 1월 14일부터 2월 14일까지 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3인展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도자 등 총 2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곡선이 지닌 조형적 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학적 가치를 탐구한다. 화면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선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정, 그리고 예술이 건네는 유연한 위로를 마주하는 자리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각진 모서리도,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한 직선도 아니다. 나를 매료시키는 것은 자유롭고 관능적인 곡선이다.” 라는 건축가 오스카 니에메예르(Oscar Niemeyer)의 문장은 이번 전시를 여는 하나의 감각적 선언처럼 읽힌다. 곡선은 단순한 형태적 선택을 넘어, 삶의 리듬과 세계의 숨결을 시각화하는 본질적인 언어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곡선은 미술사 속에서 자연성과 생명력, 그리고 역동성의 근원적 조형 요소로 작동해 왔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가 S자 곡선을 ‘미의 선(Line of Beauty)’이라 명명하며 그 안에서 생명력을 보았던 것처럼, 직선이 효율과 명확한 목적을 상징한다면 곡선은 시작과 끝의 경계를 유연하게 흐트러뜨리며 그 사이의 과정, 움직임, 그리고 감정의 여운을 호출한다. 현대에 이르러 곡선은 단지 시각적 쾌감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며, 작가의 신체성, 물질의 시간, 사유의 깊이를 담아내는 다층적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페이토 갤러리,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展은 이러한 질문 위에서 김민석, 이가진, 하태임 세 작가가 구축해 온 각자의 독자적 세계를 하나의 장면으로 불러낸다. 전시는 곡선이라는 공통된 조형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매체와 미감이 어떻게 교차하고 확장될 수 있는지 탐색한다.
김민석의 작업은 디지털 조형 언어를 아날로그 회화의 물질성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화면 속 매끄러운 디지털 볼륨은 수만 번의 붓질을 거치며 물리적 질량을 획득하고, 이질적인 실존감을 발산한다. 가상의 픽셀 볼륨을 실재적인 촉각적 볼륨으로 치환해내는 그의 곡선은 시대적 무게와 실존의 감각을 담아내며, 관객에게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손끝으로 만지는 듯한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가진의 도자 작업은 전통적 청자의 언어를 전복하면서 새로운 공간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담는 기물이라는 기능과 규범을 벗어나, 표면의 질감과 유약의 흐름, 불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곡면의 생명력을 강조한다. 내부를 비우고 표면에 물질적 감각을 축적하는 방식은 도자를 ‘그릇’이 아닌 살아 있는 장면으로 전환시키며, 평면과 입체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조형 경험을 제안한다.
하태임의 곡선은 반복되는 신체의 움직임이 남긴 호흡의 기록에 가깝다. 회전하며 그어 내려간 색의 궤적은 겹겹의 결을 이루며 축적되고, 화면 위에서 하나의 리듬과 선율을 형성한다. 그녀의 곡선은 색채가 가진 감정의 기억을 호출하며, 정교한 질서와 해방된 감정이 공존하는 명상의 장을 만든다.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이번 전시는 김민석의 압도적 볼륨, 이가진의 청아한 물질성, 하태임의 경쾌한 색채 리듬이 ‘곡선’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나 서로의 세계를 비추는 순간을 보여준다. 화면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 쌓여온 시간과 감정, 그리고 예술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와 마주하게 된다. 《곡선의 미학》展 은 오늘날 곡선이 왜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감각의 언어인지를 다시 묻는다.
작가 소개
김민석 Minseok Kim (b.1996)
김민석, Van Goghs Still Life, 2025, acrylic on canvas, 53 x 45.5 cm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김민석은 디지털 툴이 제안하는 무결한 조형미를 아날로그적인 붓질의 밀도로 치환하여 본질이 소외된 시대에 손끝으로 만져질 듯한 ‘입체적 덩어리’를 통해 실존의 무게를 묻는 작가이다. 현대 사회의 디지털 환경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파편화하는지 주목하여 작업을 시작한 김민석은 초기에는 벨라스케스나 고야 같은 거장의 화풍을 독학으로 연구하여 페르난도 보테로를 연상케 하는 풍만한 양감을 탐구한다. 곧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자신만이 독창적인 시각언어로 발전시킨 김민석은 마티스의 〈Dance〉나 반고흐의 정물화 등 클래식한 명화의 도상을 차용하되 이를 그래픽 툴의 3D 브러시 툴과 같은 디지털 논리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던 고전적 이미지와 표면적 경험만 남은 현대적 감각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이자 김민석만의 ‘디지털-아날로그 하이브리드’ 회화로 진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김민석 작업의 핵심은 덩어리와 매끄러운 그라데이션에 있다. 언뜻 보면 정교한 디지털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크릴 물감을 수차례 덧바르고 건조하는 지극히 노동집약적인 아날로그적인 회화 과정을 통해 작업을 완성한다. 직접 조색한 물감을 여러 레이어로 겹쳐 쌓아 올리고 평면의 캔버스 위에 실재하는 듯한 입체적인 부피감을 부여한다. 화면 속 인물과 사물, 배경은 올록볼록한 덩어리의 형태로 단순화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실체 없는 픽셀 데이터가 지배하는 현시대에서 회화가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실재감과 물질의 힘을 증명한다.
독학으로 미술의 길을 개척한 김민석은 2024년 안다즈 서울 강남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더 프리뷰 성수 등 주요 아트페어와 전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마티스의 명작을 오마주한 작품을 선보이며 ‘90년대생 블루칩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의 조형적 단위를 회화적 질감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가상과 실제의 경계에서 현대 회화가 나아갈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이가진 Lee Ka Jin (b.1985)
이가진, Fluidity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전통 청자의 시각 언어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고 두터운 유약의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깊이를 포착하는 이가진은 한국 전통 청자를 현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초기 〈Waterdrop〉 시리즈에서 도자의 전통적인 상징인 호(壺)의 구조 안에 청자 특유의 비색을 담았다. 점차 ‘그릇’이라는 기능적 범주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한 이가진의 작업은 〈Dewdrop〉 시리즈에서 내부 공간을 뒤집어 입구를 없앤 ‘무용한 볼륨’을 창조하고 벽에 거는 설치 작업을 통해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최근 〈Fluidity〉 시리즈에서는 유약을 물감처럼, 흙을 종이처럼 다뤄 도자공예를 현대적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물질의 본질에서 출발해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와 소통이라는 개념적 주제로 나아가는 이가진의 작가적 진화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가진은 보통 얇게 입히는 유약을 덩어리째 두껍게 쌓아 올리는 방식을 통해 청자의 푸른 색감에 입체적인 깊이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가마 속에서 구워지며 흙과 유약이 반응해 만들어내는 우연적인 흐름과 매끄러운 곡선은 작가의 인내와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도자라는 기물의 쓰임새를 상징하는 구멍이나 부피감을 제거한 이가진의 작업은 도자에서 순수한 조형물로 마주하게 된다.
서울대학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가진은 파엔자 국제도자공모전에서 입선, 세계도자비엔날레에서의 수상 등을 통해 국제적인 역량을 인정받았다. 국내외 유수 미술관, 갤러리, 도자 비엔날레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경기도자미술관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 기업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청자를 통해 현대인의 감각과 관계를 담아내는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이가진은 한국 현대 공예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하태임 Ha Taeim (b.1973)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하태임은 신체의 궤적이 그려낸 유연한 곡선과 그 속에 겹겹이 쌓인 맑은 색채의 층위를 통해 조형적 리듬감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기억이 흐르는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가다. 199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문자와 기호를 화면에 나열하며 소통의 불가능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한 하태임은 초기에는 캔버스 위에 일기처럼 써 내려간 문자나 기호적 형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독백을 시각화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점차 언어의 구체적인 지시성은 사라지고 문자는 추상적인 곡선의 형태로 변모하였고, 하태임의 대표적 조형 언어인 ‘컬러밴드(Color Band)’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태임의 작업은 ‘통로(Un Passage)’라는 일관된 주재 아래 수없이 반복되고 중첩되는 색 띠의 향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투명도가 높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수십 번 붓질을 쌓아 올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색의 투명성과 깊이를 캔버스에 담는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컬러 밴드들은 화면 위에서 서로 교차하고 색이 겹쳐지며 시각적인 리듬감과 음악적 선율을 만들어낸다. 컬러 밴드는 단순한 색채의 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이 축적된 시간의 기록이자 감정의 층위다. 맑고 경쾌한 색색의 띠는 지워짐과 동시에 생성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시각적 곡선을 공감각적인 공간으로 치환한.
색채를 통해 감각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하태임의 컬러 밴드는 고유한 감정을 상징한다. 컬러 밴드로 이루어진 화면은 고정된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열린 구조로써 화면 위 색채의 통로를 따라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소통(Passage)이 완성된다. 오직 색과 면, 선의 조화로만 구성된 하태임의 회화는 현대인들에게 복잡한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순수한 미적 체험의 순간을 선사한다.
프랑스 파리 국립 미술학교(ENSBA)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미술학 박사를 취득한 하태임은 1995년 개인전을 시작하여 서울, 파리, 베이징, 독일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개최하며 독보적 입지를 다져왔다. 1999년 모나코 국제 현대 회화전에서 ‘모나코 왕국’ 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가구, 와인, 향수 등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회화의 영역을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모나코 현대미술관, 아모레 뮤지엄, 삼성전자 등 국내외 기관, 갤러리, 미술관 등 다양한 곳에 소장되고 있다.
《곡선의 미학 The Aesthetics of Curves》 전시 포스터
(사진 제공: 페이토 갤러리)
자료 제공: 페이토 갤러리
Edited by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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