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라는 타이틀이 매년 반복된다. 특히 이번 9월 추석까지 이어진 무더위는 다소 기후 변화에 무감각했던 한국도 그 변화를 체감하게 했다.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서는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미술계도 치열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외 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미술계 역시 기후 위기, 인류세, 환경을 주제로 한 기획전과 작품들을 선보이며,1 인간 중심주의를 규탄하고 지구 행성의 존속을 위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움직임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공생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공허함은 가시지 않는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서 마지노선으로 내걸었던 지구 온도 1.5도 상승이 불과 5년도 채 남지 않았으며,2 환경문제가 다시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소화되는 것 등을 접할 때 더욱 그러하다. 앞선 희망적 마음은 니힐리즘(Nihilism)3으로 향하는 공허와 무기력 사이에서 잠식되고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허무에 잠식당하지 않고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떤 태도와 마음을 가져야 할까.
본 글은 이러한 동시대의 맥락과 흐름 속에서 '조화'의 중요성을 재설파하는 서울식물원의 《리듬: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을 살펴본다. 전시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체 간의 공생을 모색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가시적으로 탐색한다. 서울식물원 내ㆍ외부 곳곳에 있는 장소들의 색(色)을 담아내고자 하는 본 기획전시는 장소특정성을 기반으로 장소적 맥락과 공간적 특성을 반영하는 작업들을 선보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공간들의 위치와 동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기획의 맥락을 주시하고, 녹음, 이병찬, 스튜디오 1750, 박봉기의 작업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호흡과, 비인간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구 행성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를 환기해 보고자 한다.
들어가며 -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
전시의 부제인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은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a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의 두 철학자가 주고받은 식물 생명에 관한 서신을 엮은 『식물의 사유』의 14장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에서 사랑 안에서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을 부분 인용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이끄는 사회에서 식물은 생명체 중 의지와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미발달된 존재로 그저 연료로 소비될 뿐이었다. 식물과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이자 자원으로 바라보는 인간 중심주의는 결국 "우리를 살게 해주는 산소 공급을 막으며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4 14장에서는 이와 같이 자연을 대상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으로 비유한다. 우리가 사는 이 구성된 세계 안에서 우리의 실존적 존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둘'로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인 상태에서 벗어나 둘로 존재하는 것은 곧, "자연적 속성을 회복하고 자연적 속성에서 시작하기 위함"이다.5
본 전시는 자연과 함께 다수로 존재하기, 자연과 비인간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각 존재들 간의 리듬을 상기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식물원의 네 군데의 장소를 담아내는 작품들은 그곳에서 작품과 자연에 조우하는 개개인 존재들의 '리듬'을 찾아나가길 제안한다. 전시는 기존에 사용하던 전시 공간인 마곡문화관, 프로젝트홀2과 더불어 온실과 주제원까지로 전시 공간을 확장한다. 각 작업들은 공간 내에 인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간적 특성과 어우러지거나 장소의 맥락을 반영하는 '조화'를 지향한다.
-1 장소에 어울린다는 것 (마곡문화관, 프로젝트홀2)
[도판.1]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전경 (사진 출처: 국가 유산포털)
먼저 소개할 작품은 서울식물원에서 동쪽 방면 끝에 위치하는 마곡문화관에 설치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녹음의 작품이다. 과거 쌀 생산을 위한 중요한 근대 농업시설이었던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마곡문화관은 김포군 일대의 물을 관리했었다. 구 양천리 배수펌프장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농사를 위한 수리 시설을 담당했었던 것이다. [도판.1] 1928년부터 1980년까지 52년간의 세월과 역사가 담겨 있는 목조 건물을 보존 및 복원한 마곡문화관은 과거의 흔적과 역사성을 지닌 현재의 공간이 되었다.6 이곳에서 녹음의 <비에서 눈으로>를 만나볼 수 있다. [도판.2,3]
[도판.2,3] 녹음, <비에서 눈으로>, 2024, 아크릴 파이프, 재활용 플라스틱 플레이크, 13 x 4m, 가변크기, 5채널 프로젝션 맵핑, 6분. 제공:서울식물원(촬영:소농지)
암흑 공간에 자리한 <비에서 눈으로>의 설치 작업은 은은하게 빛을 내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자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만드는 스튜디오 1750의 이번 작품은 재활용 플라스틱 플레이크 위에 세운 아크릴 파이프로 구성된 설치 작업과 미디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관람객은 마곡문화관 내부를 조심스럽게 걸어 다닐 수 있으며, 입구에서 오른쪽 한편에 있는 좁은 폭의 계단을 이용해 복층으로 올라가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미디어 작품의 서사에 따라 빛들은 모래알 같은 플라스틱 플레이크를 비추고, 아크릴 파이프를 따라 물처럼 흐른다. <비에서 눈으로>는 과거 이곳 배수 펌프장에서 이뤄졌던 물의 순환과 역사를 시각적 효과를 통해 소환한다. 물의 역사는 자연의 강한 생명력과 이를 사용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며,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자 또한 이러한 자연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도판.4] 이병찬, <CREATURE>, 2024, 에어모터, 플라스틱, 포장용 필름지 등 혼합재료, 가변설치 제공:서울식물원(촬영:소농지)
마곡문화관에서 나와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식물문화센터의 2층 출입구와 연결된다. 이곳에 들어서면 높은 층고를 가진 로비 형 전시실인 프로젝트 홀2에 설치된 이병찬 작가의 <CREATURE>가 있다. [도판.4] 천장에 행잉 설치되어 위압감을 주는 작품은 자본주의 소비 사회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본의 비가시적인 힘과 질량을 시각화하는 작가의 《CREATURE》시리즈이다. <CREATURE>는 자본주의에 의해 도시에 생겨난 보이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를 보여준다. [도판.5]
[도판.5,6] 이병찬, <CREATURE>, 2024, 에어모터, 플라스틱, 포장용 필름지 등 혼합재료, 가변설치 제공:서울식물원(촬영:소농지)
포장용 필름지의 맹목적인 반짝거림과 화려한 색감, 모터로 인해 만들어지는 움직임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보는 이를 현혹한다. 작품의 재료가 되는 플라스틱과 비닐은 현대 소비 사회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 시대의 부산물로 작가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매체로 사용된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저주의 몫(La part maudite)』(1949)에서 "에너지는 반드시 이익 없이 소모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럽든 또는 재앙적으로 소모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오직 생산과 분배에만 관심을 갖는 자본주의는 잉여 가치를 생산해 내고 축적한다. 이때 바타유가 강조하는 것은 목적과 조건 없는 '소모'이다.7 작가의 작업에서 플라스틱 비닐은 진정한 소모가 부재한 채 생산만 계속되는 현시대의 소비 사회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불안정성과 거대한 질량을 보여주는 이 작업은 소비의 맹목성을 앞세워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홀에 서서 작품을 올려다보면 피조물인 <CREATURE>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진다. 호흡으로 다가오는 이 소리는 팽창과 붕괴라는 자본의 압력과 비현실적이고 비가시적인 감각의 영역을 표현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개방적인 특징을 가진 프로젝트 홀2은 <CREATURE>의 소리를 주변의 소음과 어우러지게 한다. 작품이 만드는 소리, 내ㆍ외부의 사람들의 소리,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식물들의 소리 등이 공간 속에서 함께 합쳐져 은은하게 울리는 것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화려함에 미혹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작품 아래 머물며 <CREATURE>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작품 하단에 위치한 볼록 거울은 눈 앞의 <CREATURE>를 왜곡된 형상으로 재현한다. [도판.6] 형상과 주변의 장면을 일그러진 형태로 보기를 제시하는 이 거울은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가치들의 불확실성을 암시하는 듯 하였다.8 이렇듯 이병찬 작가의 작업은 인간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동시대의 불안정한 사회의 호흡을 담고 있다.
-2 자연에서 호흡을 이어가며(온실, 주제원)
[도판.7] 스튜디오 1750, <평행정원>, 2024, 방수천, 송풍기, 나무, 가변설치 제공: 서울식물원(촬영: 소농지)
프로젝트 홀2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온실의 입구가 나온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전시 공간으로 추가된 온실과 주제원은 12개의 도시의 식물 문화와, 한국의 자연을 재현하는 식물원의 주요 공간이다. 기후 환경을 기준으로 지중해관과 열대관 두 구역으로 나뉘는 온실은 서울식물원의 메인 공간이다.9 오목한 접시 모양의 거대한 온실로 들어서면 더위와 습기, 초록 식물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향이 느껴진다. 사계절이 푸른 온실은 여러 식물을 포용하며 생명의 아름답고 강한 군집을 보여준다. 이곳 온실의 입구에 스튜디오 1750의 7개의 공기 조형물인 <평행정원>이 설치되어 있다. [도판.7]
스튜디오 1750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돌연변이 형태의 생물을 만든다. 자연환경의 변화로 등장하는 가상의 식물을 상상하는 이 작품들은 온실에서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식물들과도 어렴풋하게 닮았다. <평행정원>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수축과 팽창하며 살랑살랑 움직이는데 마치 생명체의 호흡을 연상시킨다. 또한, 가상 식물들이 가진 발랄하고 경쾌한 외형의 첫인상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상이 그리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듯 하였다.
다만, 온실 입구에 배열된 작품들은 온실과 조화되기보다는 입구를 부가적으로 꾸미는 장식적 요소로 보였다. 거대한 온실 안에 군집한 다양한 식물들에 비해 입구에만 포진된 작업들은 다소 소극적인 감이 있다. 작품이 좀 더 온실의 특성과 이어지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온실 속으로 개입하는 설치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앞선 작업들에서 이어졌던 장소와 공간의 반영이 만드는 조화와 리듬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스카이워크를 따라 온실을 나와 조금 걸으면 주제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제원 내부 '오늘의 정원'과 '숲정원 다리'에는 박봉기 작가의 《호흡》연작이 설치되어 있다. 앞서 이병찬 작가의 <CREATURE>가 동시대 사회의 불안정한 호흡을 담고 있었다면 주제원의 박봉기 작가의 작업은 자연으로 향하는 호흡을 담는다. 작가는 주로 야외에서 작업하며 작품이 설치되는 현장을 반영하는 생태주의적 조각을 만든다. 그의 《호흡》연작은 대나무의 탄성을 이용하여 나무를 한 줄 한 줄 엮어 가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다. 대나무의 색감은 주제원의 초록 식물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어울리며, 인위와 자연의 조화를 추구한다. 여기서 작가에게 있어 '호흡'은 생존과 직결된 것 뿐만 아니라 삶을 영위하며 나오는 가치의 근원이다. '호흡을 맞추는 것'은 서로의 거리를 배려하며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10

[도판.8,9] 박봉기, <호흡>, 2024, 대나무, 5 x 7.5m(주제원 내 오늘의 정원) 제공: 서울식물원(촬영: 소농지)
'오늘의 정원' 한편에 설치된 <호흡>은 곧 피어날 꽃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은 새 둥지, 꽃, 물고기, 나무 등의 군집한 생명체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 안으로 들어가 잠깐 멈춰 서서 작품의 제목처럼 숨을 고르고 위를 바라보면 대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도판.8,9] 리플렛의 지도를 보고 '숲정원 다리' 방향을 향해 조금 걸으니 식물과 생명체의 미세 구조를 확대한 모습의 <호흡>이 보였다. [도판.10] 다리의 중간에 설치된 작품은 다리를 고리처럼 감싸고 있고 관람객은 작품의 사이를 통해 정원 내 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작품 안을 통해 주제원을 보고, 작품 사이를 통과하는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현상학적 체험은 '사랑 안에서 둘로 존재하기' 위한 행위로 자연 속 존재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도판.10] 박봉기, <호흡>, 2024, 대나무, 3 x 4 x 4m (주제원 내 숲정원 다리) 제공: 서울식물원(촬영: 소농지)
나가며 -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는 것
다시 『식물의 사유』 속 이리가레와 마이클 마더의 서신으로 돌아가 보자. 3장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기」에서 "'공기가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말하는 이리가레는 공기와 호흡이라는 보편적인 매개를 통해 우리 모두 서로 교감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모든 존재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관여하는 경험인 호흡은 지구 위 존재자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그들과 숨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11 호흡은 과학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통해 유기체와 대기가 가스를 교환하는 행위이다. 마더에 따르면 호흡은 안과 밖 사이의 참된 공유로 일어난다. 우리는 숨의 공유를 통해 "자연과 식물에게 진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인정하고 식물이 선사하는 관대함에 참여"할 수 있다. 호흡은 분리가 아닌 공유로 "모든 존재들이 자신들이 속해 있고,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살아가기 위해 서로 나누어야 하는 같은 공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이다.12 이로써 생명의 영역을 키우고 함께 사는 것, 둘로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호흡을 통한 진정한 조화의 실천과 지속 가능성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단편적인 일례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장소특정적 작업을 찾아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장소특정적 작업 감상에 있어서 제각각의 장소를 직접적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물리적 차원의 힘듦일 수도 있겠으나, 이 경험은 우리가 여전히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편리함과 합리성에서 멀어지는 방향을 어색하고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지를 환기시켰다. 비인간과의 공생의 중요성을 통감하면서도 편리하고 효율적인 기획 아래에 조성된 쾌적한 실내의 화이트 큐브 전시의 편리함은 놓기 싫어하는 모순적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소들과 작은 조화에서 시작하는 이 전시의 호흡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의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조화와 호흡을 공유하는 전시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동시대의 공허를 조금씩 메꿔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Writer 박지민(홍익대학교박물관 인턴, 독립기획자)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다. 미디어와 기술에 의해 생겨나는 간극과 신체성에 대해 관심을 두고 동시대의 여러 시각예술을 연구한다. 성남문화재단, ACC_R 레지던시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박물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TAG)’는 신진 평론가를 발굴하기 위한 Thiscomesfrom의 비평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는 10주간 매주 금요일마다 새로운 비평가의 글을 소개하며, 릴레이로 진행됩니다. 각 참가자는 자신의 비평 글과 함께 다음 참가자를 지목(태그)하여 챌린지를 이어갑니다.
1 장선희, 「기후변화와 정치 생태학, 그리고 전시의 수사학」,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22, pp.103~121
2 BBC뉴스 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lk4p0yv723o (2024년 10월 22일 접속)
3 니힐리즘(nihilisim): 일반적으로 허무주의를 의미하나, 니체는 단지 "모든 것이 허무하다", "덧없다"는 삶에 대한 감상적 의미가 아닌, 특정 규범에 따른 진리, 가치, 의미 도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특정한 규범에 따른 진리, 가치, 의미, 도덕이 없는 상태, 무의 상태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참조: 니체의 허무주의란 무엇인가?, https://veritas.kr/news/35650) (2024년 10월 22일 접속)
4 루스 이리가레ㆍ마이클 마더, 이명호ㆍ김지은 역, 『식물의 사유』, 알렙, 2020, p.200
5 위의 책, p.142
6 최춘웅, 「[공공, 기억, 장소: 버려진 공간을 소환할 때] 마곡문화관」, https://vmspace.com/project/project_view.html?무pase_seq=MjM1NA== (2024년 10월 22일 접속)
7김연희, 김홍중, 「조르주 바타유의 관점에서 본 비정형과 불가능의 미학」, 『미술이론과 현장』 31, 2021, pp.111~138
8 작가 인터뷰 참조, https://www.vogue.co.kr/2023/04/28/보통의-젊은-작가가-자본의-형상을-창조한다면/ (2024년 10월 22일 접속)
9 온실과 주제원은 유료 입장 구역으로 기후동행카드를 제시하면 입장권을 50% 할인 받을 수 있다.
10 「예술가의 작업실 (3) 박봉기 작가」, 『경남신문』,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406418(2024년 10월 21일 접속)
11 루스 이리가레ㆍ마이클 마더, 이명호ㆍ김지은 역, 『식물의 사유』, 알렙, 2020, pp. 41~50
12 위의 책, pp.198~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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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라는 타이틀이 매년 반복된다. 특히 이번 9월 추석까지 이어진 무더위는 다소 기후 변화에 무감각했던 한국도 그 변화를 체감하게 했다.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서는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미술계도 치열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외 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미술계 역시 기후 위기, 인류세, 환경을 주제로 한 기획전과 작품들을 선보이며,1 인간 중심주의를 규탄하고 지구 행성의 존속을 위한 여러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움직임들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공생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공허함은 가시지 않는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서 마지노선으로 내걸었던 지구 온도 1.5도 상승이 불과 5년도 채 남지 않았으며,2 환경문제가 다시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소화되는 것 등을 접할 때 더욱 그러하다. 앞선 희망적 마음은 니힐리즘(Nihilism)3으로 향하는 공허와 무기력 사이에서 잠식되고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허무에 잠식당하지 않고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떤 태도와 마음을 가져야 할까.
본 글은 이러한 동시대의 맥락과 흐름 속에서 '조화'의 중요성을 재설파하는 서울식물원의 《리듬: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을 살펴본다. 전시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체 간의 공생을 모색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가시적으로 탐색한다. 서울식물원 내ㆍ외부 곳곳에 있는 장소들의 색(色)을 담아내고자 하는 본 기획전시는 장소특정성을 기반으로 장소적 맥락과 공간적 특성을 반영하는 작업들을 선보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이야기한다. 공간들의 위치와 동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기획의 맥락을 주시하고, 녹음, 이병찬, 스튜디오 1750, 박봉기의 작업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호흡과, 비인간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구 행성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를 환기해 보고자 한다.
들어가며 -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
전시의 부제인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은 루스 이리가레(Luce Irigaray)와 마이클 마더(Michael Marder)의 두 철학자가 주고받은 식물 생명에 관한 서신을 엮은 『식물의 사유』의 14장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에서 사랑 안에서 둘로 존재하는 것으로」을 부분 인용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이끄는 사회에서 식물은 생명체 중 의지와 주체성을 지니지 못한 미발달된 존재로 그저 연료로 소비될 뿐이었다. 식물과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이자 자원으로 바라보는 인간 중심주의는 결국 "우리를 살게 해주는 산소 공급을 막으며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4 14장에서는 이와 같이 자연을 대상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으로 비유한다. 우리가 사는 이 구성된 세계 안에서 우리의 실존적 존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둘'로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인 상태에서 벗어나 둘로 존재하는 것은 곧, "자연적 속성을 회복하고 자연적 속성에서 시작하기 위함"이다.5
본 전시는 자연과 함께 다수로 존재하기, 자연과 비인간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각 존재들 간의 리듬을 상기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식물원의 네 군데의 장소를 담아내는 작품들은 그곳에서 작품과 자연에 조우하는 개개인 존재들의 '리듬'을 찾아나가길 제안한다. 전시는 기존에 사용하던 전시 공간인 마곡문화관, 프로젝트홀2과 더불어 온실과 주제원까지로 전시 공간을 확장한다. 각 작업들은 공간 내에 인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간적 특성과 어우러지거나 장소의 맥락을 반영하는 '조화'를 지향한다.
-1 장소에 어울린다는 것 (마곡문화관, 프로젝트홀2)
먼저 소개할 작품은 서울식물원에서 동쪽 방면 끝에 위치하는 마곡문화관에 설치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녹음의 작품이다. 과거 쌀 생산을 위한 중요한 근대 농업시설이었던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마곡문화관은 김포군 일대의 물을 관리했었다. 구 양천리 배수펌프장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농사를 위한 수리 시설을 담당했었던 것이다. [도판.1] 1928년부터 1980년까지 52년간의 세월과 역사가 담겨 있는 목조 건물을 보존 및 복원한 마곡문화관은 과거의 흔적과 역사성을 지닌 현재의 공간이 되었다.6 이곳에서 녹음의 <비에서 눈으로>를 만나볼 수 있다. [도판.2,3]
암흑 공간에 자리한 <비에서 눈으로>의 설치 작업은 은은하게 빛을 내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자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만드는 스튜디오 1750의 이번 작품은 재활용 플라스틱 플레이크 위에 세운 아크릴 파이프로 구성된 설치 작업과 미디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관람객은 마곡문화관 내부를 조심스럽게 걸어 다닐 수 있으며, 입구에서 오른쪽 한편에 있는 좁은 폭의 계단을 이용해 복층으로 올라가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미디어 작품의 서사에 따라 빛들은 모래알 같은 플라스틱 플레이크를 비추고, 아크릴 파이프를 따라 물처럼 흐른다. <비에서 눈으로>는 과거 이곳 배수 펌프장에서 이뤄졌던 물의 순환과 역사를 시각적 효과를 통해 소환한다. 물의 역사는 자연의 강한 생명력과 이를 사용해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며,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자 또한 이러한 자연의 순환 안에서 살아가는 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도판.4] 이병찬, <CREATURE>, 2024, 에어모터, 플라스틱, 포장용 필름지 등 혼합재료, 가변설치 제공:서울식물원(촬영:소농지)
마곡문화관에서 나와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식물문화센터의 2층 출입구와 연결된다. 이곳에 들어서면 높은 층고를 가진 로비 형 전시실인 프로젝트 홀2에 설치된 이병찬 작가의 <CREATURE>가 있다. [도판.4] 천장에 행잉 설치되어 위압감을 주는 작품은 자본주의 소비 사회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본의 비가시적인 힘과 질량을 시각화하는 작가의 《CREATURE》시리즈이다. <CREATURE>는 자본주의에 의해 도시에 생겨난 보이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를 보여준다. [도판.5]
포장용 필름지의 맹목적인 반짝거림과 화려한 색감, 모터로 인해 만들어지는 움직임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보는 이를 현혹한다. 작품의 재료가 되는 플라스틱과 비닐은 현대 소비 사회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 시대의 부산물로 작가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매체로 사용된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저주의 몫(La part maudite)』(1949)에서 "에너지는 반드시 이익 없이 소모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럽든 또는 재앙적으로 소모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오직 생산과 분배에만 관심을 갖는 자본주의는 잉여 가치를 생산해 내고 축적한다. 이때 바타유가 강조하는 것은 목적과 조건 없는 '소모'이다.7 작가의 작업에서 플라스틱 비닐은 진정한 소모가 부재한 채 생산만 계속되는 현시대의 소비 사회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불안정성과 거대한 질량을 보여주는 이 작업은 소비의 맹목성을 앞세워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홀에 서서 작품을 올려다보면 피조물인 <CREATURE>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진다. 호흡으로 다가오는 이 소리는 팽창과 붕괴라는 자본의 압력과 비현실적이고 비가시적인 감각의 영역을 표현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는 개방적인 특징을 가진 프로젝트 홀2은 <CREATURE>의 소리를 주변의 소음과 어우러지게 한다. 작품이 만드는 소리, 내ㆍ외부의 사람들의 소리,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식물들의 소리 등이 공간 속에서 함께 합쳐져 은은하게 울리는 것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화려함에 미혹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작품 아래 머물며 <CREATURE>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작품 하단에 위치한 볼록 거울은 눈 앞의 <CREATURE>를 왜곡된 형상으로 재현한다. [도판.6] 형상과 주변의 장면을 일그러진 형태로 보기를 제시하는 이 거울은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가치들의 불확실성을 암시하는 듯 하였다.8 이렇듯 이병찬 작가의 작업은 인간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동시대의 불안정한 사회의 호흡을 담고 있다.
-2 자연에서 호흡을 이어가며(온실, 주제원)
프로젝트 홀2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온실의 입구가 나온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전시 공간으로 추가된 온실과 주제원은 12개의 도시의 식물 문화와, 한국의 자연을 재현하는 식물원의 주요 공간이다. 기후 환경을 기준으로 지중해관과 열대관 두 구역으로 나뉘는 온실은 서울식물원의 메인 공간이다.9 오목한 접시 모양의 거대한 온실로 들어서면 더위와 습기, 초록 식물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향이 느껴진다. 사계절이 푸른 온실은 여러 식물을 포용하며 생명의 아름답고 강한 군집을 보여준다. 이곳 온실의 입구에 스튜디오 1750의 7개의 공기 조형물인 <평행정원>이 설치되어 있다. [도판.7]
스튜디오 1750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돌연변이 형태의 생물을 만든다. 자연환경의 변화로 등장하는 가상의 식물을 상상하는 이 작품들은 온실에서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식물들과도 어렴풋하게 닮았다. <평행정원>은 공기의 흐름에 따라 수축과 팽창하며 살랑살랑 움직이는데 마치 생명체의 호흡을 연상시킨다. 또한, 가상 식물들이 가진 발랄하고 경쾌한 외형의 첫인상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상이 그리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듯 하였다.
다만, 온실 입구에 배열된 작품들은 온실과 조화되기보다는 입구를 부가적으로 꾸미는 장식적 요소로 보였다. 거대한 온실 안에 군집한 다양한 식물들에 비해 입구에만 포진된 작업들은 다소 소극적인 감이 있다. 작품이 좀 더 온실의 특성과 이어지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온실 속으로 개입하는 설치를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앞선 작업들에서 이어졌던 장소와 공간의 반영이 만드는 조화와 리듬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스카이워크를 따라 온실을 나와 조금 걸으면 주제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제원 내부 '오늘의 정원'과 '숲정원 다리'에는 박봉기 작가의 《호흡》연작이 설치되어 있다. 앞서 이병찬 작가의 <CREATURE>가 동시대 사회의 불안정한 호흡을 담고 있었다면 주제원의 박봉기 작가의 작업은 자연으로 향하는 호흡을 담는다. 작가는 주로 야외에서 작업하며 작품이 설치되는 현장을 반영하는 생태주의적 조각을 만든다. 그의 《호흡》연작은 대나무의 탄성을 이용하여 나무를 한 줄 한 줄 엮어 가는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다. 대나무의 색감은 주제원의 초록 식물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어울리며, 인위와 자연의 조화를 추구한다. 여기서 작가에게 있어 '호흡'은 생존과 직결된 것 뿐만 아니라 삶을 영위하며 나오는 가치의 근원이다. '호흡을 맞추는 것'은 서로의 거리를 배려하며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10
[도판.8,9] 박봉기, <호흡>, 2024, 대나무, 5 x 7.5m(주제원 내 오늘의 정원) 제공: 서울식물원(촬영: 소농지)
'오늘의 정원' 한편에 설치된 <호흡>은 곧 피어날 꽃의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은 새 둥지, 꽃, 물고기, 나무 등의 군집한 생명체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 안으로 들어가 잠깐 멈춰 서서 작품의 제목처럼 숨을 고르고 위를 바라보면 대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도판.8,9] 리플렛의 지도를 보고 '숲정원 다리' 방향을 향해 조금 걸으니 식물과 생명체의 미세 구조를 확대한 모습의 <호흡>이 보였다. [도판.10] 다리의 중간에 설치된 작품은 다리를 고리처럼 감싸고 있고 관람객은 작품의 사이를 통해 정원 내 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작품 안을 통해 주제원을 보고, 작품 사이를 통과하는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현상학적 체험은 '사랑 안에서 둘로 존재하기' 위한 행위로 자연 속 존재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도판.10] 박봉기, <호흡>, 2024, 대나무, 3 x 4 x 4m (주제원 내 숲정원 다리) 제공: 서울식물원(촬영: 소농지)
나가며 -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는 것
다시 『식물의 사유』 속 이리가레와 마이클 마더의 서신으로 돌아가 보자. 3장 「보편적 호흡을 공유하기」에서 "'공기가 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말하는 이리가레는 공기와 호흡이라는 보편적인 매개를 통해 우리 모두 서로 교감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모든 존재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관여하는 경험인 호흡은 지구 위 존재자들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그들과 숨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11 호흡은 과학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통해 유기체와 대기가 가스를 교환하는 행위이다. 마더에 따르면 호흡은 안과 밖 사이의 참된 공유로 일어난다. 우리는 숨의 공유를 통해 "자연과 식물에게 진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인정하고 식물이 선사하는 관대함에 참여"할 수 있다. 호흡은 분리가 아닌 공유로 "모든 존재들이 자신들이 속해 있고,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살아가기 위해 서로 나누어야 하는 같은 공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이다.12 이로써 생명의 영역을 키우고 함께 사는 것, 둘로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호흡을 통한 진정한 조화의 실천과 지속 가능성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단편적인 일례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장소특정적 작업을 찾아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장소특정적 작업 감상에 있어서 제각각의 장소를 직접적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물리적 차원의 힘듦일 수도 있겠으나, 이 경험은 우리가 여전히 자본주의 소비 사회의 편리함과 합리성에서 멀어지는 방향을 어색하고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지를 환기시켰다. 비인간과의 공생의 중요성을 통감하면서도 편리하고 효율적인 기획 아래에 조성된 쾌적한 실내의 화이트 큐브 전시의 편리함은 놓기 싫어하는 모순적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소들과 작은 조화에서 시작하는 이 전시의 호흡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의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조화와 호흡을 공유하는 전시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동시대의 공허를 조금씩 메꿔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Writer 박지민(홍익대학교박물관 인턴, 독립기획자)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예술학을 공부하고 있다. 미디어와 기술에 의해 생겨나는 간극과 신체성에 대해 관심을 두고 동시대의 여러 시각예술을 연구한다. 성남문화재단, ACC_R 레지던시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박물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TAG)’는 신진 평론가를 발굴하기 위한 Thiscomesfrom의 비평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는 10주간 매주 금요일마다 새로운 비평가의 글을 소개하며, 릴레이로 진행됩니다. 각 참가자는 자신의 비평 글과 함께 다음 참가자를 지목(태그)하여 챌린지를 이어갑니다.
1 장선희, 「기후변화와 정치 생태학, 그리고 전시의 수사학」, 『한국조형디자인학회』, 2022, pp.103~121
2 BBC뉴스 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lk4p0yv723o (2024년 10월 22일 접속)
3 니힐리즘(nihilisim): 일반적으로 허무주의를 의미하나, 니체는 단지 "모든 것이 허무하다", "덧없다"는 삶에 대한 감상적 의미가 아닌, 특정 규범에 따른 진리, 가치, 의미 도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특정한 규범에 따른 진리, 가치, 의미, 도덕이 없는 상태, 무의 상태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참조: 니체의 허무주의란 무엇인가?, https://veritas.kr/news/35650) (2024년 10월 22일 접속)
4 루스 이리가레ㆍ마이클 마더, 이명호ㆍ김지은 역, 『식물의 사유』, 알렙, 2020, p.200
5 위의 책, p.142
6 최춘웅, 「[공공, 기억, 장소: 버려진 공간을 소환할 때] 마곡문화관」, https://vmspace.com/project/project_view.html?무pase_seq=MjM1NA== (2024년 10월 22일 접속)
7김연희, 김홍중, 「조르주 바타유의 관점에서 본 비정형과 불가능의 미학」, 『미술이론과 현장』 31, 2021, pp.111~138
8 작가 인터뷰 참조, https://www.vogue.co.kr/2023/04/28/보통의-젊은-작가가-자본의-형상을-창조한다면/ (2024년 10월 22일 접속)
9 온실과 주제원은 유료 입장 구역으로 기후동행카드를 제시하면 입장권을 50% 할인 받을 수 있다.
10 「예술가의 작업실 (3) 박봉기 작가」, 『경남신문』,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406418(2024년 10월 21일 접속)
11 루스 이리가레ㆍ마이클 마더, 이명호ㆍ김지은 역, 『식물의 사유』, 알렙, 2020, pp. 41~50
12 위의 책, pp.198~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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