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돌봄은 누군가를 양육하거나 보살피는 전통적 의미를 넘어서 코로나 팬데믹, 고령화, 기후 위기와 맞물리며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돌봄이란 단순한 물리적 행위나 의무가 아닌, 비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태도로 자리 잡았다. 광주비엔날레 핀란드 파빌리온의 일환으로 개최된 ⟪돌봄 행위⟫는 카티 키비넨(Kati Kivinen)과 피르코 시타리(Pirkko Siitari)의 공동 기획으로, 핀란드에 거주하는 네 명의 시각 예술가, 나얍 노르 이크람(Nayab Noor Ikram), 헤르타 키스키(Hertta Kiiski), 마이자 타미(Maija Tammi), 삼프사 비르카예르비(Sampsa Virkajärvi)의 작품을 통해 돌봄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이 전시에서는 돌봄을 단순한 생명 유지 행위가 아닌,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태도로 제시한다. 특히, 이 전시를 통해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의 예술가들이 돌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국가 파빌리온의 정체성을 통해 들여다볼 좋은 기회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는 돌봄의 개념을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생명체와 나아가 비인간 존재까지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독특한 시각과 매체를 통해 이 주제를 다채롭게 풀어내며, 돌봄의 문제를 정치적이자 개인적인 문제로, 나아가 사회와 개인,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 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확장시킨다. 그들은 돌봄의 결핍이 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인류 외부의 생명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돌봄의 필요성과 공감 확장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돌봄이 특정 생명체나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새로운 형태의 돌봄과 공존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면 이제 전시장을 돌아보며 각 작품에서 그 상상을 살펴보자.

⟪돌봄 행위⟫ 전시 전경, 삼프사 비르카예르비, <너와 함께>, 2011, 비디오, 17분 34초.(좌), 삼스파 비르카예르비, <무엇이 남았는가>, 2015-2018, 비디오, 22분 32초.(우)
죽음을 통한 성찰과 돌봄의 재발견
삼프사 비르카예르비의 작품은 돌봄이라는 주제를 인간의 유한함과 연결시킨다. 2관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그의 영상은 2채널로 구성되어 각각 치매와 노화를 겪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묘사한다. 어머니를 묘사한 영상 <무엇이 남았는가?>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말년을 담고 있으며, 질병이 진행되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선형적 시간을 초월해서 과거로 돌아가 그들의 관계를 되새긴다. 비르카예르비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돌봄의 대상과 주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며 결국 역전된다는 점이다. 철학자 에바 키테이(Eva Kittay)는 ‘투명자아’를 통해서 돌봄을 필요로하는 자아와 돌보는 자아가 충돌할 경우 돌봄을 양보하게 된다고 설명한다.1 작업에서도 돌봄의 자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돌봄과 사랑의 관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이어지는지를 고찰한다. 부모님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그는 자신이 자녀로서 돌봄을 통해 받은 사랑과 보살핌을 되돌아보고, 돌봄의 행위가 단지 한 생애 동안에만 머물지 않고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관계의 깊은 연결임을 깨닫는다.

삼프사 비르카예르비, <무엇이 남았는가?> 중 어머니와 편지들, 2015-2018, 비디오, 22분 32초. © 삼프사 비르카예르비
이어서 마치 심해에 들어온 것처럼 어두운 3관을 들어오면 보이는 것은 방금 출생을 마친 어머니와 신생아의 사진과 알을 지키는 문어에 대한 영상이다. 마이자 타미는 <옥토맘>에서 심해에서 알을 부화시키는 문어와 인간 어머니를 병치하며 돌봄의 행위를 다룬다. 타미는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53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리는 문어 '옥토맘'의 모성을 통해, 생명의 유한함과 그 연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문어는 알이 부화한 후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의 삶을 끝마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죽음은 단절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죽음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돌봄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타미의 작품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돌봄 행위를 통해 우리가 돌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타미는 돌봄의 행위를 유한성과 영원성의 경계에서 바라본다. 문어의 생명 주기는 마치 돌봄과 양육의 극적인 은유처럼 다가온다. 인간 사회에서의 돌봄이 긴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일부라면, 문어의 돌봄은 자신을 희생하여 새로운 생명을 잇는 강렬한 행위이다. 타미는 이 과정을 통해, 돌봄이 생명체의 한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비르카예르비와 타미의 작품에서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봄의 본질을 재발견하게 한다. 이는 곧, 돌봄이 단순히 인간의 생애에 한정되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깊은 관계의 표현임을 보여준다. 돌봄의 시작은 언제나 끝을 전제한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기에 돌봄이 필요하고, 그 유한함 속에서 돌봄은 생명과 죽음을 잇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는 돌봄을 단순한 행위가 아닌 유한한 존재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보며,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와 무생물까지도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돌봄이 생명체 간의 관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구축되는 지속적인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돌봄 행위⟫ 전시전경. 마이자 타미, <옥토맘>, 2021–2023, 사진, 영상 2분 53초, 사운드 4분 20초.(좌)
마이자 타미, <옥토맘>, 2021–2023, 사진, 영상 2분 53초, 사운드 4분 20초. © 마이자 타미(중,우)
비인간에 대한 사랑과 돌봄
1관으로 들어가면 헤르타 키스키의 사진 작업들과 영상을 볼 수 있다. 키스키의 작품은 돌봄의 대상을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로 확장한다. 그녀는 비디오 작업 <히드라>(2023)에서 두 소녀와 외딴섬에서 발견한 불멸의 폴립 간의 관계를 통해 비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과 돌봄을 탐구한다.2 키스키는 사랑과 돌봄이 특정 생명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구상 모든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녀의 작업은 다양한 생명체와 유기적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동맹을 형성하는 미래를 꿈꾸며, 기존의 위계를 뛰어넘는 평등한 돌봄을 제안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녀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두 딸과 같은 위계로 이미 죽은 존재들에 대한 따뜻함이 보인다는 것이다. 두 딸 아르마와 이르미는 죽은 사슴과 식물과 병치 된다. 키스키는 자연과 동물로부터 돌봄과 공감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종간 돌봄을 상상한다. 그녀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돌봄의 개념을 확장하여 비인간 존재들, 즉 자연과 무생물에 대한 돌봄을 요청한다. 이는 오늘날 환경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돌봄의 개념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고민하게 한다.

헤르타 키스키, <히드라>, 2022, 비디오, 7분 40초. © 헤르타 키스키
⟪돌봄 행위⟫ 전시전경. 헤르타 키스키, <플라스티센타>시리즈, 2022.
돌봄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
마지막으로 2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나얍 노르 이크람의 영상 퍼포먼스 <가족>은 올란드 군도의 절벽에서 촬영된 가족 초상화로, 그녀의 가족을 통한 돌봄의 개념을 다룬다. 이크람은 파키스탄 이주민 가족의 문화를 배경으로, 어머니가 딸의 긴 머리를 감기는 모습을 통해 돌봄의 의식을 표현한다. 이 장면은 신체적 돌봄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시사하며, 돌봄이란 단순한 육체적 행위를 넘어 세대를 잇는 관계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특히 머리카락은 여러 문화권에서 기억을 담고 있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이크람은 돌봄이 단순한 물리적 행위를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문화적 전승의 중요한 매개체임을 시사한다. 이크람의 작품은 문화적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돌봄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해지는지를 탐구한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단순히 육체적 돌봄을 넘어서, 정체성과 전통, 그리고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크람은 가족을 통해 돌봄의 행위가 세대를 거쳐 지속되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됨을 강조한다.

⟪돌봄 행위⟫ 전시전경. 나얍 노르 이크람, <가족>, 2022.

나얍 노르 이크람, <가족>, 2022, 디지털화된 16mm 컬러 필름, 7분 25초. © 나얍 노르 이크람
죽음과 돌봄,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
전시 ⟪돌봄 행위⟫는 돌봄과 죽음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탐구하며, 죽음을 넘어서는 돌봄의 지속성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시각과 매체를 통해, 유한한 생명의 과정 속에서 돌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다루고,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깊은 관계로서의 돌봄을 재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탐구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봄이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돌봄은 인간과 비인간,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며, 우리 삶의 다양한 층위를 연결하는 실천으로 확장된다.
모든 존재는 취약하고 유한하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고, 성장하면서도 자아를 확립하기 전까지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후 나이가 들어 신체적으로 약해지면 다시 돌봄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간의 취약성은 오히려 사회를 형성하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고, 인간이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인간은 자신뿐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체나 비인간 존재들까지 돌보는 존재이다. 이처럼 돌봄은 단순한 감정이나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돌봄학자 트론토(Joan Tronto)가 말했듯이, 돌봄은 두뇌 속의 생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실천이다.3 그저 머릿속의 이상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행위로 발현된다.
전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취약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돌봄의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돌봄을 실천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 전시가 제기하는 돌봄의 윤리적 메시지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 중요한 성찰을 남기며, 돌봄이 단순한 의무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행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결국, 돌봄은 생명을 단순히 지속시키는 행위를 넘어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인간의 본질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돌봄을 통해 생명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보듬고 가치를 보존하며 전승한다. 이러한 돌봄의 확장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정민(독립기획자)
이정민은 독립기획자로 전시를 만들고 출판을 한다. 동시대 시각 예술을 연구하며, 미디어와 기술을 통해 감각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특히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오류를 만들어내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과 리움미술관을 거쳐 현재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태그(TAG)’는 신진 평론가를 발굴하기 위한 Thiscomesfrom의 비평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는 10주간 매주 금요일마다 새로운 비평가의 글을 소개하며, 릴레이로 진행됩니다. 각 참가자는 자신의 비평 글과 함께 다음 참가자를 지목(태그)하여 챌린지를 이어갑니다.
1 에바 키테이, 『돌봄: 사랑의 노동』, 김희강·나상원 역(서울: 박영사, 2016).
2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 도록』, (광주: (재)광주비엔날레, 2024).
3 조안 트론토, 『돌봄민주주의』 김희강·나상원 역(서울: 박영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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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돌봄은 누군가를 양육하거나 보살피는 전통적 의미를 넘어서 코로나 팬데믹, 고령화, 기후 위기와 맞물리며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돌봄이란 단순한 물리적 행위나 의무가 아닌, 비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태도로 자리 잡았다. 광주비엔날레 핀란드 파빌리온의 일환으로 개최된 ⟪돌봄 행위⟫는 카티 키비넨(Kati Kivinen)과 피르코 시타리(Pirkko Siitari)의 공동 기획으로, 핀란드에 거주하는 네 명의 시각 예술가, 나얍 노르 이크람(Nayab Noor Ikram), 헤르타 키스키(Hertta Kiiski), 마이자 타미(Maija Tammi), 삼프사 비르카예르비(Sampsa Virkajärvi)의 작품을 통해 돌봄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이 전시에서는 돌봄을 단순한 생명 유지 행위가 아닌,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태도로 제시한다. 특히, 이 전시를 통해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의 예술가들이 돌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국가 파빌리온의 정체성을 통해 들여다볼 좋은 기회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는 돌봄의 개념을 인간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 모든 생명체와 나아가 비인간 존재까지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독특한 시각과 매체를 통해 이 주제를 다채롭게 풀어내며, 돌봄의 문제를 정치적이자 개인적인 문제로, 나아가 사회와 개인, 인간과 비인간 유기체 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확장시킨다. 그들은 돌봄의 결핍이 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인류 외부의 생명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돌봄의 필요성과 공감 확장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돌봄이 특정 생명체나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새로운 형태의 돌봄과 공존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면 이제 전시장을 돌아보며 각 작품에서 그 상상을 살펴보자.
⟪돌봄 행위⟫ 전시 전경, 삼프사 비르카예르비, <너와 함께>, 2011, 비디오, 17분 34초.(좌), 삼스파 비르카예르비, <무엇이 남았는가>, 2015-2018, 비디오, 22분 32초.(우)
죽음을 통한 성찰과 돌봄의 재발견
삼프사 비르카예르비의 작품은 돌봄이라는 주제를 인간의 유한함과 연결시킨다. 2관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그의 영상은 2채널로 구성되어 각각 치매와 노화를 겪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묘사한다. 어머니를 묘사한 영상 <무엇이 남았는가?>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말년을 담고 있으며, 질병이 진행되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선형적 시간을 초월해서 과거로 돌아가 그들의 관계를 되새긴다. 비르카예르비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돌봄의 대상과 주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며 결국 역전된다는 점이다. 철학자 에바 키테이(Eva Kittay)는 ‘투명자아’를 통해서 돌봄을 필요로하는 자아와 돌보는 자아가 충돌할 경우 돌봄을 양보하게 된다고 설명한다.1 작업에서도 돌봄의 자아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돌봄과 사랑의 관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이어지는지를 고찰한다. 부모님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그는 자신이 자녀로서 돌봄을 통해 받은 사랑과 보살핌을 되돌아보고, 돌봄의 행위가 단지 한 생애 동안에만 머물지 않고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관계의 깊은 연결임을 깨닫는다.
삼프사 비르카예르비, <무엇이 남았는가?> 중 어머니와 편지들, 2015-2018, 비디오, 22분 32초. © 삼프사 비르카예르비
이어서 마치 심해에 들어온 것처럼 어두운 3관을 들어오면 보이는 것은 방금 출생을 마친 어머니와 신생아의 사진과 알을 지키는 문어에 대한 영상이다. 마이자 타미는 <옥토맘>에서 심해에서 알을 부화시키는 문어와 인간 어머니를 병치하며 돌봄의 행위를 다룬다. 타미는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53개월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리는 문어 '옥토맘'의 모성을 통해, 생명의 유한함과 그 연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문어는 알이 부화한 후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의 삶을 끝마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죽음은 단절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의미한다. 죽음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돌봄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타미의 작품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돌봄 행위를 통해 우리가 돌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타미는 돌봄의 행위를 유한성과 영원성의 경계에서 바라본다. 문어의 생명 주기는 마치 돌봄과 양육의 극적인 은유처럼 다가온다. 인간 사회에서의 돌봄이 긴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일부라면, 문어의 돌봄은 자신을 희생하여 새로운 생명을 잇는 강렬한 행위이다. 타미는 이 과정을 통해, 돌봄이 생명체의 한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비르카예르비와 타미의 작품에서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봄의 본질을 재발견하게 한다. 이는 곧, 돌봄이 단순히 인간의 생애에 한정되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깊은 관계의 표현임을 보여준다. 돌봄의 시작은 언제나 끝을 전제한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기에 돌봄이 필요하고, 그 유한함 속에서 돌봄은 생명과 죽음을 잇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는 돌봄을 단순한 행위가 아닌 유한한 존재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보며,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와 무생물까지도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돌봄이 생명체 간의 관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구축되는 지속적인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돌봄 행위⟫ 전시전경. 마이자 타미, <옥토맘>, 2021–2023, 사진, 영상 2분 53초, 사운드 4분 20초.(좌)
마이자 타미, <옥토맘>, 2021–2023, 사진, 영상 2분 53초, 사운드 4분 20초. © 마이자 타미(중,우)
비인간에 대한 사랑과 돌봄
1관으로 들어가면 헤르타 키스키의 사진 작업들과 영상을 볼 수 있다. 키스키의 작품은 돌봄의 대상을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로 확장한다. 그녀는 비디오 작업 <히드라>(2023)에서 두 소녀와 외딴섬에서 발견한 불멸의 폴립 간의 관계를 통해 비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과 돌봄을 탐구한다.2 키스키는 사랑과 돌봄이 특정 생명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구상 모든 존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녀의 작업은 다양한 생명체와 유기적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동맹을 형성하는 미래를 꿈꾸며, 기존의 위계를 뛰어넘는 평등한 돌봄을 제안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녀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두 딸과 같은 위계로 이미 죽은 존재들에 대한 따뜻함이 보인다는 것이다. 두 딸 아르마와 이르미는 죽은 사슴과 식물과 병치 된다. 키스키는 자연과 동물로부터 돌봄과 공감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종간 돌봄을 상상한다. 그녀의 작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돌봄의 개념을 확장하여 비인간 존재들, 즉 자연과 무생물에 대한 돌봄을 요청한다. 이는 오늘날 환경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돌봄의 개념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제시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고민하게 한다.
헤르타 키스키, <히드라>, 2022, 비디오, 7분 40초. © 헤르타 키스키
⟪돌봄 행위⟫ 전시전경. 헤르타 키스키, <플라스티센타>시리즈, 2022.
돌봄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
마지막으로 2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나얍 노르 이크람의 영상 퍼포먼스 <가족>은 올란드 군도의 절벽에서 촬영된 가족 초상화로, 그녀의 가족을 통한 돌봄의 개념을 다룬다. 이크람은 파키스탄 이주민 가족의 문화를 배경으로, 어머니가 딸의 긴 머리를 감기는 모습을 통해 돌봄의 의식을 표현한다. 이 장면은 신체적 돌봄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시사하며, 돌봄이란 단순한 육체적 행위를 넘어 세대를 잇는 관계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특히 머리카락은 여러 문화권에서 기억을 담고 있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이크람은 돌봄이 단순한 물리적 행위를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문화적 전승의 중요한 매개체임을 시사한다. 이크람의 작품은 문화적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돌봄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해지는지를 탐구한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단순히 육체적 돌봄을 넘어서, 정체성과 전통, 그리고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크람은 가족을 통해 돌봄의 행위가 세대를 거쳐 지속되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됨을 강조한다.
⟪돌봄 행위⟫ 전시전경. 나얍 노르 이크람, <가족>, 2022.
나얍 노르 이크람, <가족>, 2022, 디지털화된 16mm 컬러 필름, 7분 25초. © 나얍 노르 이크람
죽음과 돌봄,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
전시 ⟪돌봄 행위⟫는 돌봄과 죽음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탐구하며, 죽음을 넘어서는 돌봄의 지속성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시각과 매체를 통해, 유한한 생명의 과정 속에서 돌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다루고,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깊은 관계로서의 돌봄을 재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탐구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봄이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돌봄은 인간과 비인간,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으며, 우리 삶의 다양한 층위를 연결하는 실천으로 확장된다.
모든 존재는 취약하고 유한하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고, 성장하면서도 자아를 확립하기 전까지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후 나이가 들어 신체적으로 약해지면 다시 돌봄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간의 취약성은 오히려 사회를 형성하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게 만드는 기반이 되었고, 인간이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인간은 자신뿐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체나 비인간 존재들까지 돌보는 존재이다. 이처럼 돌봄은 단순한 감정이나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돌봄학자 트론토(Joan Tronto)가 말했듯이, 돌봄은 두뇌 속의 생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실천이다.3 그저 머릿속의 이상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행위로 발현된다.
전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취약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돌봄의 필요성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돌봄을 실천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 전시가 제기하는 돌봄의 윤리적 메시지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 중요한 성찰을 남기며, 돌봄이 단순한 의무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행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결국, 돌봄은 생명을 단순히 지속시키는 행위를 넘어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인간의 본질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돌봄을 통해 생명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보듬고 가치를 보존하며 전승한다. 이러한 돌봄의 확장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정민(독립기획자)
이정민은 독립기획자로 전시를 만들고 출판을 한다. 동시대 시각 예술을 연구하며, 미디어와 기술을 통해 감각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특히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오류를 만들어내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성남문화재단과 리움미술관을 거쳐 현재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태그(TAG)’는 신진 평론가를 발굴하기 위한 Thiscomesfrom의 비평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는 10주간 매주 금요일마다 새로운 비평가의 글을 소개하며, 릴레이로 진행됩니다. 각 참가자는 자신의 비평 글과 함께 다음 참가자를 지목(태그)하여 챌린지를 이어갑니다.
1 에바 키테이, 『돌봄: 사랑의 노동』, 김희강·나상원 역(서울: 박영사, 2016).
2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 도록』, (광주: (재)광주비엔날레, 2024).
3 조안 트론토, 『돌봄민주주의』 김희강·나상원 역(서울: 박영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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