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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010] 가장 뻔하지만 가장 어려운, ‘관객을 위한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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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전시 사이니지.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올해로 세 번째, 서로 다른 성격의 비엔날레에 전시팀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비엔날레라는 전시 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엔날레 무용론’을 비롯한 비판을 마주할 때마다, 비판의 쉬움과 함께 진정한 해결은 내부인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판이 생산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지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글 또한 특정 입장을 지적하는 것보다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비엔날레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개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결국, 조직이 개선되고 진전하는 데는 질타하는 외부인의 용기보다 직접 대면하고 건의하는 내부인의 용기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엔날레같이 힘든 곳에서 왜 일하나?’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작년에 다른 비엔날레에서 함께 일했던 해외 큐레이터는 전시가 끝난 후 필자에게 좀 더 쾌적한 직장을 구하길 바란다는 말을 이메일로 전하기도 했었다. 비엔날레의 매력은 예측 불가능한 현장감에 있다. 다양한 국적의 해외 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커미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업체와 기획 단계부터 조율하고, 감독 및 작가들의 요청 사항을 해결하고, 전시 장소를 매번 새롭게 물색해야 한다. 안정보다는 실시간 변동 상황을 헤쳐나가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과정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와 책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 한가운데서 체력과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대규모의 전시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은 특별하다. 미술계에서 주목하는 큰 이벤트에 참여했다는 자부심과 어려운 일을 우리가 협력해서 해냈다는 연대감도 빼놓을 수 없다. 각국에서 방문하는 작가들과 큐레이터, 화려한 개막식과 리셉션도 한몫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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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록흐 나피시 with 아마달리 카디바, <이어지는 도시들>, 2024, 천, 천에 드로잉, 관객 참여, 가변 크기.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하지만 비엔날레를 오픈하고 폐막과 철수까지 모두 완료된 시점에서, 어렵다고 해서 꼭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고생했기 때문에, 혹은 여러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끝내 실현했기 때문에 이 전시는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일까? 비엔날레는 현재를 반영하는 전시로, 전 지구적으로 공통 직면한 동시대 이슈를 제시한다. 비엔날레의 목적이 유의미한 메시지 전달에 있을 때, 기획자나 작가 개개인의 성취, 혹은 조직 구성원의 뿌듯함에 그치게 된다면 비엔날레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규모의 전시가 개인의 자아실현, 혹은 한 조직의 업적에 머물지 않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방향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관객을 위한 비엔날레


2024부산비엔날레의 전시 주제는 ‘어둠에서 보기’로,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도량이라는 두 개념의 생소한 조합을 바탕으로 한다. 해적 계몽주의는 해적이 사실은 기존 사회 구조에 저항한 사람들이며, 초기 민주주의의 형태를 띤 모임이었다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주장에서 비롯된다. 불교의 무아 개념은 자아를 확장하는 것으로, 고유한 정체성에 집착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도전이다. 빛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계몽주의와 달리 이 전시는 어둠이 가진 불완전함과 드러나지 않은 미확정의 상태를 포용한다.


전시기획서를 읽었을 때 해당 내용은 비엔날레가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충실하다. 그러나 이 전시를 ‘주제’가 아닌 ‘실천’과 ‘태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관객들에게 실제로 다가가려고 한 시도가 있었는지, 해적의 반권위적인 태도가 예술감독과 전시팀 사이의 업무 협력 과정에서 실천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관객에게 단지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기분이나 색다른 볼거리 외에 제공한 것이 없다면, 예술감독은 부산에 잠시 방문하는 입장으로 ‘나의 기획’을 펼쳐 보이고 떠나게 되기 마련이며, 이 패턴은 2년에 한 번씩 초기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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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쉬 술라이만 & 아이 와얀 다르마디, <PETA - 한 점의 구름, 아홉 개의 빗방울>, 2024, 혼합매체 (나무 조각, 호코라 신사, 지도, 책, 은행나무), 가변크기.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단적인 예로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거의 모든 워크숍과 프로그램이 개막식으로부터 3일 안에 몰려있었다. 3일 안에 모든 프로그램이 완료되어야 했던 현실적인 이유는 이번 비엔날레 참여작가 총 62팀에서 38팀의 해외 작가가 부산에 방문한 것도 크다. 이중 작품 설치까지 모두 완료하였으나 단지 오프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는 작가들도 다수였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수의 해외 작가가 방문하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이 개막식 앞뒤로 완료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전시 내용을 전달하는 목적과 연관이 없는 항목에 큰 예산을 할애한 것은 이 전시의 우선순위를 여실히 보여준다. 몇십 명의 작가가 한번 부산에 방문해서 일회성 프로그램을 하는 것보다 몇 명의 작가가 부산에서 장기간 작업을 이어가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더 의미 있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자 왕의 인터뷰 영상에서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지’라는 질문에 이 곡을 만든 작곡가를 위해 연주한다고 답한 장면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전시에 참여하면서 누구를 위해 이 전시가 만들어지는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주와 전시는 관객에게 준비한 콘텐츠를 설득력 있게 선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비엔날레는 감독이나 작가의 새로운 아이디어만을 위한 자리가 아닌, 관객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비엔날레를 만드는 사람은 전시의 메시지를 왜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지 설득할 의무가 있다. 관객들이 난해한 개념과 서문을 이겨내면서까지 이 전시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며, 이는 전시를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존중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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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전시 전경, 부산현대미술관, 2024.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스펙터클이 부족한 비엔날레는 나쁜 것인가


비엔날레에 대한 흔한 피드백 중 하나가 ‘이전 비엔날레에 비해 임팩트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임팩트란 시각적인 임팩트로, 보는 이를 압도할 만한 볼거리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볼거리가 없다는 피드백에, 이에 상응하는 비주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홍이현숙의 <야행> 퍼포먼스는 시각적 구조물 없이도 관객과 배우의 교감만으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전시 기간 동안 매일 4회씩 진행된 해당 퍼포먼스는 완전한 암흑 공간 안에서 퍼포머의 가이드를 따라 상상 속 비인간 존재를 만나보고, 관객 스스로 인간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이때 관객은 평소에 사용하는 시각을 차단한 채 청각과 촉각, 후각을 통해서만 다른 이와 소통하고 공간을 감지하게 된다. 해당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통을 통해 물리적인 작품보다 더욱 생생하게 지속 가능한 경험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작품 <야행>의 계획 단계에는 어두운 바다 속을 떠올릴 수 있는 고래 등이나 그물, 잠수함 내부를 연상할 수 있도록 관객들이 올라가거나 매달릴 수 있는 구조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아이디어 발전 단계를 거쳐 최종 작품에서는 3개의 사다리와 바닥의 인조 잔디, 벽화, 천장에 매달아둔 촉각 자극용 소품들 외에는 방을 차지하는 구조물은 모두 생략되었다. 퍼포먼스를 실제로 진행해 본 결과 사다리마저 없어도 지장이 없는 동선이 완성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퍼포먼스를 완성한 것은 공간을 채우는 퍼포머의 연기와 이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상상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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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현숙, 야행(夜行), 2024, 퍼포먼스와 설치, 700x1100x500cm 공간, 30분 참여형 퍼포먼스, 10분 크리터 퍼포먼스.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또 다른 예로 린 치-웨이 의 <테이프 뮤직>에서 관객들은 원형으로 둘러앉아 글자가 적힌 '테이프'를 옆 사람에게 넘기며 지휘자나 리허설 없이 낭독한다.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관객들은 서로의 소리를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규칙과 조화를 만들어 나간다. <테이프 뮤직>은 2005년부터 여러 국가에서 실시한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작가가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전시 기간 동안 매주 일요일 퍼포머의 안내와 함께 관객들의 참여로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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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치-웨이, <테이프 뮤직>, 2024, 퍼포먼스, 30분.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두 퍼포먼스 작업 모두 스펙터클한 비주얼이나 구조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퍼포머의 역량으로 비어있는 암흑의 공간은 상상 속에서 실제보다 거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 간의 임시적인 연대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었다. 물리적 구조물과 작품을 만드는 커미션 제작비용의 많은 부분을 퍼포먼스나 참여형 작품 진행에 소요되는 인건비, 관객들이 직접 발언할 기회를 주거나 전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할애한다면 스펙터클한 설치 작품 못지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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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네이미, <더빙 식물>, 2024, 사운드 설치 (대나무, 혼 스피커 8개), 800x300x300cm.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폐막 이후를 책임지는 전시기획


2024부산비엔날레에서 미완성을 뜻하는 ‘논 피니토Non Finito’는 자본으로 교환이 가능한 체제에 저항하는 전략으로 채택되었다. 전시장 가벽 또한 논 피니토를 적용하여 선택적으로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철골 구조를 노출하였다. 그러나 이 ‘미완의 벽’을 연출하기 위해 여전히 수많은 임시 벽들이 제작되었고 전시 종료 이후 폐기되었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전기톱을 이용해 가벽을 조각내어 자르고 부수고 있는데 같은 공간 반대편에서는 바로 다음 전시를 위해 쉴 새 없는 타카 소리와 함께 합판 가벽을 제작하고 있는 장면은 부조리극처럼 다가왔다.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전시에 수반되는 대규모 폐기물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대상이다. 2024부산비엔날레는 ‘65일간의 대장정’을 마쳤지만 이를 달리 이야기하면 단 두 달을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생산되었다. 전시를 만들기 위해 구조물과 커미션 작품을 만들고, 전시 종료 후엔 인력과 비용을 들여 이를 다시 해체하고 폐기물을 처리한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 과정에 점차 무뎌지게 된다는 것이다. 전시를 제작하고, 전시 공간을 원래대로 복구하느라 모든 체력을 소진할 즈음이 되면 커미션 작품을 비롯한 구조물은 빨리 눈앞에서 해치워야 할 골칫덩이로 여겨진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방법이 폐기이다. 폐기물을 싣고 나가는 트럭을 보면서 후련한 마음으로 전시 철거를 마무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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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망망대해로>, 2024, 부서진 미술관 가벽, 고장난 드론, MDF 합판, 시멘트,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앞으로 전시기획은 전시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전시를 철거하는 것까지 전체 과정을 아울러야 한다. 기획서를 작성할 때 전시 구성과 홍보, 프로그램 계획과 더불어 커미션 작품과 구조물 제작에 따른 해체 계획과 폐기물의 양도 항목에 포함되어 있어야 기획자도 이를 의식하고 전시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작가들이 작성하는 작품 제작 계획서 또한 마찬가지다. 커미션 작품을 제작한 후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제작 계획서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조립, 해체가 가능한 가벽이나 거치대 사용, 이미 제작한 구조물을 보관하고 재사용하는 방법, 지역 내 미술 기관이 전시마다 필요한 구조물을 대여할 수 있도록 공유 시스템과 만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담론보다 새로운 태도


광주비엔날레재단 박양우 대표는 “베니스, 광주, 그 밖에 주요 세계 미술제들이 너무 크고 막연하고 비슷한 담론을 되풀이해 온 게 사실입니다. 궁극적으로 더 특화된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달라질 길을 모색 중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달라질 길, 새로운 담론을 모색하는 것보다 이미 유효한 주제들이 어떻게 관객에게 작용하고 전시 제작 과정에서 실제 적용되고 있는지를 고심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새로운 담론이 나올 때가 아니라 담론에 걸맞은 올바른 기획 태도와 실천이 나올 때이다.


실험적인 예를 들자면, 비엔날레를 국내 작가로만 구성하기, 비행기 대신 기차나 배로만 방문하기, 모든 작품을 작가가 직접 가지고 오기, 국내에서 구한 재료로만 커미션 작품 제작하기, 작가 없이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릴레이식 퍼포먼스 진행, 작품 제작지원금을 대폭 교육 프로그램 운영으로 할당하기 등이 있다. 또한 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나오는 ‘막연하고 거대한 주제’에 대한 문제는 매번 총 60팀에서 80팀 정도의 총 몇 개 국적, 몇 명의 작가 참여라는 암묵적 ‘비엔날레 룰’에서 탈피할 때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몇십 명의 작가가 한 가지 구체적인 주제로 뾰족하게 모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적은 수의 작가를 선정하고, 한 작가당 여러 작품을 더 깊이 있게 보여줄 수 있다면 막연한 거대 담론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용이할 것이다. 비엔날레 정신은 타 전시와 차별되는 주제의 특별함이 아닌, 가장 뻔하지만 가장 어려운 ‘관객을 위한 비엔날레’에서 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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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전시 전경, 부산현대미술관.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Writer 김도연(부산비엔날레 코디네이터)

미술계 밖의 관객과도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전시 태도에 관심이 많다. 출산, 가족, 성, 외모, 노동, 질병, 노화, 죽음 등 국적과 세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경험하는 생애주기별 고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독립 기획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술 노동자들을 위한 열린 온라인 거주지 ‘노마드 큐레이터 @nomad.curator’(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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