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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004] 늪 속에서 펼쳐지는 회화의 경계: 윤미류의 ⟪Do Wetlands Scare You?⟫

Ghost Steps, 2024, Oil on canvas, 259.1 × 193.9 cm ©노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린 윤미류의 개인전 ⟪Do Wetlands Scare You?⟫는 우리를 독특한 회화적 경험으로 초대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가을의 서늘함과 함께 느껴지는 공기는 늪의 축축함과 미묘한 긴장감을 암시한다. 에어컨의 찬 기운이 전시장에 퍼져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전시장 입구 계단에 설치된 <Ghost Steps>(2024)은 마치 늪 속으로 관객을 이끄는 듯 하다. 전시장은 크게 위층과 아래층 두 구역으로 나뉘며, 작품 속 시간대는 위층은 낮, 아래층은 밤으로 구성되어 있다. 낮의 공간에서는 각 인물의 행동과 표정이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며, 밤의 공간에서는 이들이 한데 모여 어둠 속에서 더욱 비밀스럽고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윤미류  ⟪Do Wetlands Scare You?⟫ 파운드리 서울 전시 전경  ©노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이 글에서는 윤미류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회화에 대한 고민과 라이브 포토의 활용에 주목하여, 그녀의 회화가 어떻게 새로운 태도를 제시하는지 비평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작품 속에 나타나는 연출적인 면모와 루살카의 마녀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Three for One 1, 2024, Oil on canvas,193.9 × 259.1 cm ©노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The Sly and the Fool, 2024, oil on canvas, 181.8 × 227.3 cm ©노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연출과 포착: 회화로의 전환

윤미류는 작업 과정에서 인물들을 특정 장소로 초대해 그들이 늪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며 포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늪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현대적 옷차림의 인물들을 촬영했다. 작가는 사진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세심하게 배경, 소품, 제스처를 구성하지만, 인물들이 늪이라는 자연 요소와 상호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순간과 감정들을 관찰한다. 그들이 늪에 발을 들이고 물과 진흙의 질감을 느끼며 주변 환경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마치 영화감독이 배우들에게 기본 지침을 주되, 배우들이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동작을 담아내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들의 모습은 아이폰 라이브 포토(Live Photo)로 촬영된다. 라이브 포토는 촬영 순간 전후의 짧은 영상을 포함한 사진으로, 정지 이미지와 움직이는 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는 작가의 회화 매체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며, 사진 단계에서 드러나지 않은 시간과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라이브 포토에서 추출한 이미지를 회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사진과 회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허문다. 특히 비율의 조정과 프레임의 선택을 통해 인물의 파편화된 모습을 나타내거나 두 프레임 속 동일 인물을 하나의 캔버스에 배치한 <The Sly and the Fool>(2024)에서 새로운 구성과 표현 방식을 모색한다. 이는 회화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 매체 자체의 특성을 재해석하고 확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Staredown 1,2,3, 2024, oil on canvas, 193.9 × 145 cm


<Staredown>(2024)연작에서는 인물이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이나 흠뻑 젖은 옷에서 물이 떨어지는 순간 등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이런 이미지들은 연속된 사진 프레임 속 움직임을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포착한다. 물의 뭉개짐과 빛의 반사는 마치 비디오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주며, 이는 관객에게 시간성과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The Difference Was Clear to Us but You, 2024, Oil on canvas,162.1 × 227.3 cm ©노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FOUNDRY SEOUL


비밀스러운 교감: 신화적 이미지의 현대적 재구성

 

작품 속 인물들은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상과는 동떨어진 늪이라는 공간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작가는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이자 마녀인 루살카(Rusalka)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루살카는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로 사람을 유혹해 해를 끼치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윤미류는 이를 단순히 악한 마녀로 그리지 않고 현대인의 복잡한 내면과 연결 짓는다. 

 

늪에 잠긴 몸, 의심스러운 눈길, 먹이를 노리는 악어와 같은 눈빛과 위협적인 자세, 비밀스러운 속삭임은 루살카의 마녀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위협이나 공포를 전달하기보다는, 인물들 간의 긴밀하고 비밀스러운 교감을 통해 기묘한 비밀의 공간에 끼어든 듯 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관객은 어두운 늪 속에서 느껴지는 응시 속에서 남아있는 자기 내면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연출가이자 사진작가이며 때로는 지켜보는 자로서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연결된다.

 

작가가 늪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늪은 물과 땅의 경계에 있는 장소로, 고요함과 불안함,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안개가 자욱하고 물은 깊지 않고 정적이며 파동을 일며 개구리가 뛰어 들기도 한다. 이러한 늪의 특성은 루살카의 신비로운 이미지와도 연결되며,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상징한다. 늪에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탐색하며, 숨겨진 비밀과 억눌린 감정을 드러내는 장소로서, 인물들이 서로 얽혀 비밀을 주고받는 느낌을 강화한다. 축축하고 어두운 늪의 분위기는 관객에게 불편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과 마주하게 한다. 


Circle for the New Moon, 2024, Oil on canvas, 259.1 × 387.8 cm


검은 안개를 뒤로 하면 달빛 아래 물비늘이 반짝이는 늪 속에서 의식을 하는 듯 한 <Circle for the New Moon>(2024)을 마주한다. 또 다른 누군가를 늪으로 불러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달빛을 만끽하고 있는 그녀들을 바라보는 것 뿐이다.


Writer 홍해준(문화살롱5120 프로그램 매니저)

미술사와 예술학을 공부하였다. 몸과 이를 다루는 매체 간의 작용에서 발생하는 간극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문화살롱 5120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활동하며 전시를 만들고 동시대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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